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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동방학지 동방학지 제180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39 - 66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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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이 『경세유표』를 통해서 제시한 것은 국가 체제 전반의 개혁론이었고, 새로운 국가 경영 기획이었으며, 그 발전 전망을 담은 미래 국가의 청사진이었다. 그는 장구한 기간 우리나라 중세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대토지 소유를 해체하여 생산력을 증진시키고, 일하는 농민만이 토지를 점유하고 식량 생산을 전담하게 하려 하였다. 그는 이를 위해 정전제를 시행할 것을 구상하고, 국가가 공전을 마련하여 이러한 원칙을 실천한 뒤, 구일세법을 관철시켜 지주제를 해체하려고 구상하였다. 19세기 삼정 문란의 주범이었던 환곡 제도에 대해서는 그 폐단을 제거하여 진휼의 본래적인 의미를 회복시키려 하였다. 이것은 장구한 기간 국가가 진휼 정책을 통해서 국민을 보호하려 한 역사 전통을 계승하여 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환곡 제도 개혁안에도 불구하고 원곡이 고갈될 위험에 대한 안전장치로서 상평곡을 설정하였다. 그가 제안한 상평곡 운영은 조선후기 상품화폐경제의 진전에 따른 미곡의 상품화를 활용하여 미가 조절을 통해서 진휼곡을 확보하려는 전진적인 방안이었다. 정약용은 이러한 제도 개혁을 민의 자발성을 활용하여 추진하려고 구상하였다. 정전제를 시행하기 위해 구일세법을 강조한 것은 소작농들의 자발적인 지대 거부 운동을 유도한 것이었다. 또한 부공제도 관련 산업 종사자들의 공론에 입각하여 운영하려 하였다. 특히 환곡을 리 단위로 분배하자고 제안한 것은 조선후기 사회변동으로 새롭게 성장하는 서민 계층을 활용하여 진휼 기능의 실효를 거두기 위한 것이었다. 이것은 결국 향촌을 비롯한 각종 경제 공동체에서 민의 공론과 자치 능력을 신뢰하고, 그에 의지하여 국가 권력을 강화시키려는 시도였다. 정약용은 사적 토지소유를 부정하였지만 시장 경제는 인정하였다. 따라서 그가 구상한 국가는 사회주의 국가는 아니었다. 시장 경제는 인정하였지만 매점매석과 같은 자본의 횡포는 국가가 제어해야 한다고 보았으므로 자유 방임주의에 입각한 자본주의 국가를 구상한 것도 아니었다. 정약용이 『경세유표』에서 구상한 국가는 그 역할과 기능의 측면에서 볼 때 오늘날의 복지국가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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