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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문광균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저널정보
한국국학진흥원 국학연구 국학연구 제52집
발행연도
2023.11
수록면
197 - 244 (4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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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강원도에는 수재, 화재, 역병 등 자연재해가 많이 발생하였다.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도내 수령守令은 강원감사의 지휘 아래 기민을 파악하여 감영에 보고하는 한편, 진제장을 설치하여 그들을 보호하였다. 자연재해의 피해 정도가 심하면 국왕이 어사御史를 파견하여 직접 진휼을 관장하였다. 감진어사, 위유어사 등의 명칭을 띠고 온 사신들은 진휼곡을 마련하여 기민을 구제하는 한편 진휼행정을 주도하고 있는 수령과 관찰사를 감독하였다.
수령, 감사, 어사 등이 기민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곡물, 진휼곡 확보가 관건이었다. 강원도는 도내 전결이 많지 않아 스스로 기민을 구제할 여력이 되지 못했다. 따라서 인근 지역에서 곡물을 이전받아야 했는데, 그 대상지역으로는 경상도, 함경도, 충청도 등지가 대표적이었다. 조선전기부터 추진된 타도 이전곡을 통한 기민 구제는 18세기 초반까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타도에서 곡물을 이전받는 것은 선박 마련과 곡물 수송, 타도의 곡물 유출 반대 등의 이유로 지속되기가 어려웠다.
다른 지역으로부터 곡물을 지원받기가 어려워지자 강원도는 도내에서 환곡還穀을 운용하여 진휼곡을 마련하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상진곡常賑穀이다. 18세기 중엽까지 강원도의 진휼곡은 다른지역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상진곡으로 충당되었다. 여러 어사가 가져가는 「재거사목齎去事目」에도 진휼곡은 기본적으로 상진곡으로 지출하도록 규정되었다. 18세기 중엽 33만석이던 상진곡의 총량은 18세기 후반 5만석으로 줄어들었다. 무려 반세기만에 85%의 상진곡이 감소된 것이었다. 이는 잦은 자연재해에 따른 원곡 소비, 신설 되는 다른 환곡으로의 출자 등이 그 이유였다.
지속적으로 상진곡을 진휼곡으로 활용하기가 여의치 않자, 강원도는 첩별비곡, 별창분류미, 보환미 등 3종의 환곡을 새롭게 창설하였다. 이 환곡은 모두 기민을 구제하기 위해 설치된 환곡으로 18세기 후반 강원도의 전체 환곡 약 38만석 중 절반에 달하는 18만 5천석 수준이었다. 18세기 중엽 이후 강원도는 이 곡물을 통해 기민을 구제해 갔다.

목차

요약
1. 머리말
2. 강원도 자연재해의 발생과 특징
3. 자연재해의 수습과 타도의 곡물 이전
4. 곡물 확보 방안과 진휼 명목의 환곡 설치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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