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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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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이화여자대학교 한국여성연구원 여성학논집 여성학논집 제25권 제1호
발행연도
2008.1
수록면
3 - 30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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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17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남성사대부들이 제기한 여덕에 대한 담론들을 분석해봄으로써 조선시대 유교이념의 확산과 조선후기까지 남아있던 양계적 경향이 어떠한 방식으로 결합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특히 성리학이 완전히 자리 잡지 못한 시기라고 하는 15-16세기 조정담론에서는 삼종지도의 원리를 제시하며 여성들의 정치 참여를 반대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반면 성리학이 정착되었다고 하는 17세기에 일반화되어 통용되고 있던 사대부들이 작성한 여성전기물에서는 당시 사대부들이 여 성을 평가할 때 여성의 출신가문을 중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여성의 성취를 다룰 때는 삼종지도를 따른 열녀를 강조하고 있다. 남녀유별의 원리에 의거하 여 나온 삼종지도는 원래 결혼한 여성의 신분부여는 남편에 의거해야 한다는 원리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성리학이 정착되었다고 하는 17세기 이후에도 여성의 출신가문을 중시 여겼다는 것은 17세기 이후 한국사회를 유교원리에 따른 가부장제 사회의 정착이 라고 한정짓는 데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조선후기 심각한 사회문제였 던 처첩간의 갈등이나 적서차별문제는 동아시아 삼국 중 한국의 조선후기에 유독 심각 한 사회문제로 되었었다. 이 제도는 신분결정에 모계가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 것을 반영한 것이다. 또한 조선후기에 사대부가에서도 여전히 여성의 출신 가문에 따라 가 문의 향배를 결정하는 데 여성발언권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례들은 빈번하게 있었 다. 따라서 조선시대 여덕 논의에서 삼종지도를 강조할 것인가, 아니면 여성의 출신가 문을 강조할 것인가의 문제는 상황 내지 권력관계에 따라 우선순위가 매겨지며 논의되 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속에서 조선후기 유교이념으로 무장된 여성철 학자 내지 문인들도 탄생되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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