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동아시아문화연구 동아시아문화연구 제73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57 - 82 (26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이 논문에서는 전후 초기의 대표적 지식인 마루야마 마사오와 다케우치 요시미가, 전전의 문화권력 「근대의 초극」(1942)을 의식하며 전개했던 전후사상을 검토했다. ‘쇼와 15년 전쟁’과 동일한 폭을 지닌 ‘전후 15년’ 동안, 마루야마와 다케우치는 ‘근대주의자’와 ‘근대주의 비판자’라는 사상적 대결 구도를 연출하며 전후사상의 재건을 견인했다. 마루야마는 일본의 근대의 전개과정을 총체적으로 규명함으로써 초근대와 전근대가 결합했던 특수성에 마침표를 찍고자 했다. 다만, 그 특수성 역시 ‘일본적 근대’의 일환이었던 만큼 그 종언은 또 다른 의미에서 ‘근대의 초극’과 연속성을 지닌다. 한편, ‘아시아 내셔널리즘’의 부상을 의식한 다케우치는 「근대주의와 민족의 문제」(1952), 「중국의 민족주의」(1957) 등에서 마루야마를 참조하며 민족의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마루야마와 달리, 그는 ‘근대의 초극’의 사상적 재활용을 지향하는 방향을 구상했다. ‘아시아민족의 해방’이라는 실감을 추상화하면서, 실패로 끝났지만 가능했을 ‘저항’ 사상을 이론화했다(「근대의 초극」, 1959). 다만, 그가 사상의 성립 조건(=현실을 움직이는 힘)을 강조할수록, 그의 ‘근대의 초극’론은 ‘이론적 허구’에 과도히 의존하고 있다는 인상을 부각시켰다. 패전 후, 마루야마와 다케우치가 착수한 전후사상은 ‘근대’의 문제를 공통의 기축으로 하였다. 전후의 ‘근대’의 문제는 그 구성요소인 ‘민족’과 그 역사적 전개과정에서 조우한 타자 아닌 타자(=‘아시아’)의 주위를 맴돌며 부상했다. 그 과정에서 마루야마의 ‘근대적 사유’는 ‘근대의 초극’과 연속성을 보였고, 다케우치의 ‘근대의 초극’론은 ‘근대적 사유’에 의존하여 전개됐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