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 통일연구 통일연구 제21권 제2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161 - 206 (46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1991년에 ‘북일 국교 정상화’ 교섭이 시작된 이래 약 26년이지난 현재의 아베 신조 정권에서도 고이즈미 정권 때의 ‘북일 평양 선언’을 뛰어넘는 북일 관계에 있어서의 새로운 진전은 보이지 않고 있다. 당시 미국의 부시 정권은 북일 관계 개선을 우려하고 반대했지만, 고이즈미 정권과 김정일 정권은 첫 북일 정상 회담을 개최해 ‘북일 평양 선언’이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와 진전에도 불구하고, 고이즈미 정권과 김정일 정권은북일 국교 정상화를 이루지 못했으며 북일 교섭은 중단되었다. 그렇다면, 고이즈미 정권과 김정일 정권의 북일 교섭은 어떻게 추진되었으며, 북일 간의 합의는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을까? 이에 본 연구에서는 김정일 정권과 고이즈미 정권의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북일 교섭에 대해 각 정권이 어떠한 입장을 취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또한, 당시 대북 포용 정책과 대일 우호 정책을 내세웠던 김대중 정권은 북일 교섭의 진전에 어떠한 방침 및 정책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검토했다. 이는 북일 국교 정상화 교섭을 양자관계가 아닌 삼자 관계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분석했다는 점에서기존 연구들과 다른 해석을 제시할 수 있었다. 연구 결과, 부시 정권의 북일 관계 개선에 대한 반대라는 구조적인 장애 요인에도 불구하고 한일 협력 체제를 구축함으로써 북일 교섭에서 일정 부분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있었다. 여기에는 김대중 정권의 대북 포용 정책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관여가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특히 북일 교섭이 교착상태에 빠져 있을 때, 한일 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고이즈미총리에게 북일 정상 회담을 권하며 북한에 관한 정보를 공유했다. 그리고, 임동원 특사를 통해 북한 측에 일본 입장을 전달하는 등북일 교섭 추진 방식 등에 있어서의 김대중 정권의 관여는 북일관계 개선의 기반이 되었다. 즉, 김대중 정권의 이러한 관여는 북일 교섭의 진전의 근본적인 요인인 ‘일본의 북일 교섭에 대한 인식 및 교섭 추진 방식’과 ‘북한의 대일본 정책 및 교섭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주었다. 그 결과, 그동안 미국의 대북 정책 입장이구조적인 요인으로 작용해 한국과 일본의 대북 정책에 영향을 미쳐왔지만, 한일 협력 체제를 구축함으로써 한국과 일본은 미국과다른 정책적 입장을 추구할 수 있었고 미국이 만든 구조적 요인을 억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4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