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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이화어문학회 이화어문논집 이화어문논집 제46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179 - 199 (2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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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이옥(李鈺, 1760-1812)의 저작 중『봉성문여(鳳城文餘)』와 「독주문」, 「제문신문」 등 여러 시문에서 형상화된 사대부 의식을 밝히는 데 목적을두었다. 주자학이 강고했던 시대에서 이옥의 사회적 지위는 서얼 가문 출신 유생에 지나지 않았다. 36세(1796)와 37세(1797)에 소품문체를 이유로 군왕에게 과거 응시에 관한 제재를 받았다. 이후 행정상의 절차 오류로 인하여1799년 10월 다시 삼가현으로 내려갔다가 다음해 2월 서울로 돌아왔다. 이여정에서 이옥은 『봉성문여』를 창작하며 소품문체로 문학적 저항을 하였던 인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이옥의 실상은 정조의 명령을 성실히 이행하였던, 예비 사대부의식을 지닌 유생이었다. 서얼이란 사회적 지위에서 연상되는 울울한 이미지와 달리 당대는 서얼에게 규장각 각리의 길이 열려 있었다. 이옥은처분을 받고도 다시 과거에 응시하여 군왕의 기준에 맞는 답안을 제출하기 위하여 노력하였고, 충군에도 성실했다. 그러나 체제에 순응하려 할수록 도리어 체제에 거부당하는 역설이 반복되었다. 훗날 이옥은 주자학이 지배하던 완고한 고문 체제에 균열을 일으켰던아이콘으로서 연구되었다. 그러나 본고는 이옥이 의도하지 않았던 역설, 체제에 순응하고자 하였으나 소품문을 구사하였기 때문에 당대의 강고한고문 체제에 균열을 가속하였던 정황에 주목하였다. 여러 시문 및 『봉성문여』와 같은 소품문을 살펴보면 옛적 채시관의 책무대로 지역의 낯선풍속과 노래 등을 수집하여 왕도의 교화에 보탬이 되고자 했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그리하여 핍진한 인정물태와 문체의 혁신성에 주력하는 연구사 사이에서 보수적인 사대부 의식을 지닌, 소품문체를 구사하는 유생 문인이라는 빈 공간을 채워 넣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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