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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한문고전학회 漢文古典硏究 漢文古典硏究 제36권 제1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387 - 415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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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강원지역의 유교문화를 탐색하기 위한 장기 기획의 일환에서 작성된 것으로서, 정조 연간에 있었던 강릉향교의 석전제 祭需 사건을 중심으로 중앙 문화와 지역 문화의 갈등 양상을 살펴보았다. 1791년(정조 15) 강원도 영동 지역의 海弊를 혁파하는 방안의 하나로 강릉향교 석전제의 제수를 『국조오례의』에 근거하여 건어[魚鱐]를 70% 넘게 줄이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이에 강릉의 유생들은 석전제 제수는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여 정한다는 점, 󰡔국조오례의󰡕에 제수의 수량에 대해 정해놓지 않았다는 점, 대구어는 강릉의 토산품이며 공납으로 인한 폐해가 없었다는 점 등을 들며 원래대로 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유생들은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순시를 온 관찰사를 찾아가 밤새 농성하였으며, 이후 경향의 유림들에게 通文을 돌려 처분의 부당성을 호소하는 한편 유림 세력을 규합하였다. 또한 체포된 주동자를 탈취하여 향교에 숨기고 상소문을 들고 대거 상경하는 등 사태가 확대되었다. 조정에서는 서울로 상경한 유생들을 검거하여 강원도 감영으로 압송하고 강릉에 안핵어사를 파견하여 관련자들을 대거 조사하였다. 결국 사건에 주도적으로 가담하였던 유생들은 유배되었으며, 신문을 받다가 유생이 사망하기까지 하였다. 사실 이 사건은 강릉향교 석전제의 제수가 海弊인지, 제수의 표준적인 規式은 무엇인지가 핵심적인 사안이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문제는 주변으로 밀려나고 중앙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강릉 지역 유생들의 태도와 이에 대한 처벌 문제로 변질되었다. 사태가 악화된 것은 애초 정책을 입안하면서 당사자인 강릉 유생들과 아무런 협의 없이 중앙에서 파견된 부사와 관찰사 그리고 조정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하여 통보하였기 때문이다. 중앙의 문화를 표준으로 설정하고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이를 강요한 데서 온 갈등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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