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국립문화유산연구원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문화재 제49권 제4호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180 - 195 (16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영산재는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이래 한국불교의례를 대표하는 독보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다. 근년에 수륙재에 대한 활발한연구로 영산재보다 수륙재가 역사적인 유래와 규모가 더 광대하고 국가주도로 설행되었음이 밝혀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 영산재를중심으로 다양한 의례가 있었던 것으로 보았던 관점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본고에서는 영산재의 한국적 기원과 전개과정을 문헌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영산재의 현재적 의미를 고찰해 보고자하였다. 영산재는 조선초에 간행된 『진언권공』(1496)에서는 ‘작법절차’라는 항목으로 나타난다. 이 절차는 조선중기 인조 12년(1634)에간행된『 영산대회작법절차』에도 나타난다. 여기에는 ‘영산대회작법절차’로 명시되어 있다. 이것은 조선후기『 오종범음집』(1661)이나『천지명양수륙재의범음산보집』(1721)에도 영산작법, 영산대회작법으로 명시되고 있다. 근대기 <독립신문>의 기사에는 영산제로, 『석문의범』(1935)에는 영산재로 나타난다. 그럼에도 조선초와 그 이후의 것들에서 달라진 점은 창혼(唱魂)이 더해진다는 것이다. 이로써 조선초의 영산회가 부처님의 설법장면 등 가르침을 의례로 외형화하는 교화적인 내용이 중심이었다면, 중기 이후에는 창혼이더해지면서 추천(追薦)의 개념이 추가되어 불교 교화와 망혼의 천도가 함께 설행되었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65)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