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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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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 史叢(사총) 史叢(사총) 제95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131 - 164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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玄宗시기는 開元之治라 회자되는 태평성세를 구가하였지만 天寶연간 이후 쇠락의 길을 걸었다. 그 이유는 武后이래 진행된 각종 사회・경제적 폐해와 주변 민족의 강성에 따른 위기 등을 일시적으로 극복하였을 뿐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현종시기 개혁의 한계는 분명 사회・경제적 모순을 타개할 더 이상의 현실적 수단이 결여된데 있었지만 史書상 기재된 외면적 이유는 현종의 정치에 대한 염증이나 미신 숭배, 사치, 허영 등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종이 집권 직후 추진한 불교에 대한 개혁적 대책도 결국 중국사회에 뿌리내린 불교와 타협하였고 나아가 불교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길을 모색하였다. 玄宗의 불교 관련 대책은 당시의 각종 불교 폐해를 肅正하면서 정적의 견제에 주안점을 두었다. 이는 주로 左道 척결을 명분으로 진행되었고 化度寺 無盡藏院의 철폐를 거쳐 일반 백성들과 승니들의 교류를 엄금하는 것으로 절정에 달했다. 開元20년(732) 이후 당조의 불교 대책은 크게 변모하였다. 불교계는 황제의 福을 비는 등 현종과 호의적 관계를 추구하였다. 마침 현종도 도교의 長生術에 심취하고 密敎의 주술에 관심을 보였던 시점이었다. 그 결과 開元23년(735) 󰡔御注金剛經󰡕이 반포되었고 開元26년(738)에는 開元寺가 건립되었다. 이런 점에서 開元寺는 당조와 불교의 타협이었고 開元연간 사원 대책의 최종 결산이었다. 開元寺는 황제 권위를 선양하는 장소로 활용되었다. 현종은 개원사에 전통 官寺의 기능을 계승시키면서 寺名에 연호를 내세워 그 권위를 한층 선양하였다. 더욱이 현종은 자신의 생일인 千秋節 경축 행사를 개원사에서 거행시켰을 뿐만 아니라 佛像과 함께 皇帝像을 안치시켰다. 이는 단순한 황제 권위의 선전과 고양을 넘어 자신을 부처에 견주려 했던 우상화 작업이었다. 皇帝像의 안치로 황제 권위는 神聖化될 수 있었고 시각효과의 극대화도 기대할 수 있었다. 開元寺가 玄宗의 私的 기대를 충족시키는 장소로 부각된 시점부터 治世가 끝나가고 亂世의 싹이 트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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