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영남퇴계학연구원 퇴계학논집 퇴계학논집 제7호
발행연도
2010.1
수록면
5 - 37 (33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退溪 李滉(1501~1570)은 우리 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학자이고, 그의 학문적 위상에 필적할 사람을 찾기 힘들다. 그는 평생 엄격하고 진지한 자세로 학문을 하여 많은 업적을 남겼고, 많은 제자들을 길러 퇴계학파를 형성하여 우리 나라 學術史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는 학문에 대한 자세가 아주 엄격하였다. 퇴계에게 있어서 학문은 지극히 합당한 길을 찾는 하나의 여정이었다. 그래서 털끝만큼의 구차함이나 바르지 않은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비록 선배 학자라도 잘못되었거나 부족한 점이 있으면 반드시 밝혀 말했다. 그 당시 우리 나라에는 아직 본격적인 학문이 정립이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퇴계는 우리 나라의 학문을 정립한다는 생각에서 더욱 더 엄격한 잣대를 갖다 대어 후세에 표준이 될 학문을 정립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학문 가운데서도 道學을 최고의 기준에 두고 선대 학자들을 평가했다. 佛敎나 老莊 등 異端에 물든 학자는 가차 없이 貶斥하였다. 문학적인 업적이 대단한 孤雲 崔致遠, 牧隱 李穡 등은 다 佛敎에 아첨한 사람이라고 비판하였다. 晦軒 安珦 등은 학교를 세워 인재를 배양한 공로는 인정하지만, 道統을 계승했다는 愼齋 周世鵬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圃隱 鄭夢周, 寒暄堂 金宏弼 등은 학문적으로 인정하였지만 저술이 남아 있지 않아서 평가를 할 수 없다고 안타까워하였다. 陽村 權近은 견강부회하는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佔畢齋 金宗直의 경우 道學보다는 文學에 치중하였음을 아쉬워하였다. 靜庵 趙光祖의 경우는 道學을 일으켜 후세에 학문이 일어나게 한 공로는 인정하나 學力이 충실하지는 못한 상태에서, 너무 事功만을 앞세우다 사화를 당했다고 평가했다. 花潭 徐敬德은 학문이 깊지 못하면서 스스로 자랑하는 병통이 있음을 지적하였고, 理를 氣로 잘못 보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 退溪가 학문이 바르면서 깊이가 있고 저술을 남겨 후세에 전한 학자는 晦齋 李彦迪이라고 추앙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회재에 대해서 後學이라고 하여 스스로 회재의 영향을 받았음을 밝히고 있다. 퇴계의 평가는 기준을 높게 설정하여 선대 학자들에게 아주 엄격하게 적용하였는데, 그의 안목을 충족시킬 만한 전대 학자가 없었다. 본격적이면서 전통적인 저술을 남긴 학자로는 오직 晦齋만을 인정했다. 퇴계는 자기 당대까지의 우리 나라 학자들을 평가하여 적절한 위상을 설정함으로써 우리 나라 儒學史를 정리하였다고 할 수 있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4)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