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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중앙문화재연구원 중앙고고연구 중앙고고연구 제23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63 - 90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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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에는 고려시대 왕릉으로 판단되는 7기의 석실분이 남아 있다. 이중 4기는 피장자가 비정되어 있는데, 고종 홍릉, 순경태후 가릉, 희종 석릉, 원덕태후 곤릉이 그것이다. 이 중 고종 홍릉은 피장자 비정에 별다른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으나 나머지 3기의 왕릉은 문헌과 고고자료를 검토한 결과 피장자 비정이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먼저 현재의 가릉은 주변에서 능내리 석실분이 발굴되면서 과연 어느 것이 가릉인지에 의문이 든다. 두 무덤을 비교해 보면 능내리 석실분이 먼저 축조되었고, 위계도 높다. 그리고 출토인골의 분석결과에 따르면 피장자는 모두 여성이다. 강화에서 사망한 3명의 왕비 중 위치비정이 이루어진 원덕태후를 제외하면, 상기 두 무덤은 순경태후 가릉과 실능한 성평왕후 소릉일 가릉이 높다. 두 사람 중 피장 당시 위계는 순경태후가 높았으므로 결국 능내리 석실분이 가릉이고, 현재의 가릉이 성평왕후 소릉인 것으로 판단된다. 다음으로 희종 석릉과 원덕태후 곤릉은 강화부를 기준으로 볼 때 석릉이 가깝고 곤릉이 먼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현재의 피장자 비정은 그 반대이다. 발굴결과 드러난 능역과 석실의 규모, 치장정도, 출토유물을 검토해 보면 현재 곤릉이 위계가 높다. 상기 두 사람의 피장당시 위계는 비록 폐위된 왕이기는 하였으나 희종이 높았으므로 결국 현재의 곤릉이 희종 석릉이고, 현재의 석릉이 원덕태후 곤릉인 것으로 본다. 이럴 경우 문헌상의 위치 기록과 일치한다. 상기 무덤 외에 강화천도 당시 재궁을 옮긴 세조와 태조의 무덤, 그리고 재이장한 개골동 왕릉을 포함하면 강화에 남아 있어야 하는 고려왕릉은 모두 9기이다. 이 중 결실된 2기의 개골동 왕릉을 제외하면 7기가 남아 있어야 하며, 실제 그렇게 남아 있다. 이중 홍릉을 비롯한 5기의 석실분은 피장자를 비정하였으므로 결국 남은 인산리 석실분과 연리 석실분은 세조와 태조의 천도 당시 이장한 무덤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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