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대구사학회 대구사학 대구사학 제122권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159 - 202 (44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고는 일제강점기 경북 영일군을 중심으로 이주일본인의 증가와 토지소유 확대를 살펴보았다. 일제 초기 일본인들은 도로와 철도 교통이 편리하고, 넓은 평야지역을 배후 지역으로 하는 곳으로 이주했다. 이러한 조건을 갖춘 곳이 경북지역에서는 영일군이었다. 영일군은 경북지역의 대표적인 평야가 연일평야를 끼고 있었다. 넓은 평야지대를 배후지역으로 한 영일군으로 이주한 일본인들은 초기에는 동해중부선(東海中部線)을 비롯한 편리한 교통편을 바탕으로 곡물거래를 주도했다. 그들은 연일평야에서 생산된 곡물을 집산해서 일본으로 반출시켰다. 당시 영일군은 철도‧항만‧도로 등의 기반시설이 마련되어 주변 지역의 곡물과 수산물을 수집하여 일본으로 반출시키는 식민도시의 역할을 하였다. 영일군에 이주한 일본인들은 상권 장악을 바탕으로 자본을 축적한 다음 회사경영을 하는 경우도 생겼다. 포항에 가장 먼저 이주했던 中谷竹三郞이 대표적이었다. 中谷竹三郞은 초기 상업 활동을 하다 경북어업(주), 공영자동차(주), 포항운송(주), 경북수산(주), 中谷竹三郞商店(주), 조선축산(주), 경북물산(주) 등의 다양한 사업을 운영한다. 한편 영일군 이주일본인들은 농업이민에 큰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영일군에서 기간지를 차지하기 어려웠던 이주일본인들은 주로 미간지(原野, 황무지, 草生地, 沼澤地, 干瀉地)를 대부받았다. 그들은 일제로부터 대부받은 미간지를 통해 빠른 시간안에 대토지 소유자가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大內治郞과 大塚昇次郞이었다. 그들은 대부받은 미간지를 통해 목축과 농업경영을 시작했다. 특히 大塚昇次郞이 소유한 형산강 하천 일대의 막대한 미간지를 畓으로 전환하기 위해 수리조합을 설립하고자 한다. 그 결과 경북에서 일본인이 세운 최초의 수리조합인 영일수리조합을 설립한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