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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성제 (동북아역사재단)
저널정보
동북아역사재단 동북아역사논총 동북아역사논총 제65호
발행연도
2019.9
수록면
243 - 271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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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의 연구는 고구려 사절로 보이는 인물들이 벽화에 등장하고 있다는 점을 중시하여 이 장면은 이들이 강국(康國)을 방문한 사실을 묘사한 것이라고 이해하였다. 그런데 이 벽화에는 당(唐)의 사절도 그려져 있다. 적대관계에 있던 양국의 사절이 제3국에서 대면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이었을까. 이와 관련하여 607년 동돌궐(東突厥) 계민가한(啟民可汗)의 아장(牙帳)에서 수 양제가 고구려 사절을 마주했을 때 보였던 당혹감과 분노를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고구려와 당의 사절이 강국의 왕정(王庭)에 나란히 서 있는 벽화의 내용은 사실을 묘사한 장면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
벽화에는 돌궐인들이 왕을 중앙에 두고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마치 왕의 국정 운영을 곁에서 지켜보고 있는 듯한 모습인데, 당시 강국이 서돌궐(西突厥)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었던 사실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반면 당의 사절은 예물(禮物)을 바치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대열 속에서 보인다. 적어도 벽화의 묘사는 강국에 미치고 있던 당의 영향력이 대단치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고구려인의 모습을 벽화의 끝자락에 배치한 강국인의 지리인식(地理認識)과 세계관(世界觀)은 당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고구려가 동쪽 끝에 있는 나라라는 인식은 〈퀼 테긴 비문〉에 보인다. 벽화의 지리인식과 세계관은 서돌궐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나아가 조우관을 쓰고 칼을 찬 모습의 도상 역시 당이 아닌 다른 계통에서 유래되었다고 본다. 중원(中原)에서 나오는 이미지들이 비무장(非武裝)으로 공손히 두 손을 모으고 있는 모습인 데 반해, 이 도상은 허리에 칼을 찬 무인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돌궐과 고구려는 장기간에 걸쳐 다방면에서 교류하였다. 나아가 돌궐인들은 수(隋)나 당(唐)에 의해 고구려 전선(戰線)에 동원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해서 돌궐인들이 가지게 되었을 고구려에 대한 이미지는 동쪽의 끝, 해가 뜨는 나라라는 지리관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서돌궐 혹은 강국인이 중앙아시아까지 그 세력을 뻗어오고 있는 당의 위세를 피부로 느끼고 있는 현실에서, 그러한 당의 거듭된 공격을 헛되이 만들고 있던 고구려의 저력은 그야말로 눈부신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이렇게 인상적인 존재야말로 강성한 당의 사절과 함께 바르후만왕의 치세를 보다 더 영광스럽게 보여주는 등장인물이 되기에 충분했다고 여겨진다. 아프라시압 벽화의 고구려 사절이 가진 역사적 의미는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목차

I . 머리말
II . 문제의 제기
III. 서돌궐(西突厥)의 대두(擡頭)와 당군(唐軍)의 원정(遠征)
IV. 아프라시압 궁정벽화의 고구려 사절과 돌궐인(突厥人)의 세계(世界) 인식(認識)
V.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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