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대구사학회 대구사학 대구사학 제135권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149 - 189 (41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고에서는 일제시기 경상북도 영천군 금호수리조합(이하 금호수조라 약함)과 일본인 농업경영을 살펴보았다. 금호수조는 산미증식계획 시기인 1931년 2월 설립되어 1962년까지 운영되었다. 금호수조의 몽리구역은 영천군 금호면, 청통면, 경산군 와촌면 일대로 몽리면적이 530정보였다. 금호수조 설립 주체는 영천군청과 대지주들이었다. 영천군의 대표적인 대지주들은 동양척식주식회사, 조선흥업주식회사 경산관리소, 정해붕 등이었다. 그들은 일제초기부터 금호강 유역의 비옥한 대구평야에 주목하였다. 당시 영천군은 경북의 대표적인 곡물생산지이자 곡물이출지였다. 금호수조 설립 측에서 내건 설립 목적은 조합 구역 내 토지의 농업상 이용을 증진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실제 금호수조 설립 목적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 이유는 첫째, 영천군은 기존의 수리시설(제언)이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곳으로 새로운 수리시설이 필요 없는 지역이었다. 몽리구역 내에 수원은 저수지 5개소, 보 1개소였다. 둘째, 금호수조 몽리구역의 논 비율이 98.2%로 비옥한 토지가 대부분이었다. 지목변환이 필요한 밭과 산림이 적었다. 결국 당시 금호수조 설립 목적은 영천군으로 이주한 일본인 대지주와 조선인 대지주의 농업경영에서의 이윤 확대가 목적이었다. 영천군에는 일제 초기부터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조선흥업주식회사 경산관리소가 소작을 통한 농업경영을 하였다. 당시 영천군은 경북지역에서도 소작쟁의가 많이 일어난 곳으로 인근 대도시인 대구에 사는 지주들이 많았다. 금호수조 구역 내 지주 가운데 이주일본인, 동척, 조선흥업 경산관리소, 정해붕 등이 소유한 토지가 전체 금호수조 몽리면적의 79.6%를 차지했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