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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손경희 (금오공과대학교)
저널정보
대구사학회 대구사학 대구사학 제148권
발행연도
2022.8
수록면
109 - 148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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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계공려수리조합은 일제 말 전시체제기 산미증식을 위해 설립되었다. 단계공려수리조합이 설립된 금호면은 금호강이 관통하는 경북의 대표적인 쌀 생산지였다. 그 결과 일제초기부터 조선흥업(주) 농장과 동척이민으로 일본인의 이주가 많은 곳이었다. 일제는 중일전쟁과 자국의 경기 활성화에 따른 식량 요구에 폐지했던 수리조합을 다시 공려수리조합 형태로 부활시켰다. 공려수리조합은 1937~1939년까지 전국에 57곳이 설립되었다. 단계공려수리조합은 경북에서 설립된 공려수리조합 7곳 가운데 하나로 1938년 10월 27일 설립되었다. 일제가 영천군 금호면에 공려수리조합을 설립하려 한 이유는 첫째, 경북의 대표적인 쌀 생산지로 전시체제기 식량생산기지로서 주목했기 때문이다. 둘째, 기존 수리시설인 단계지를 이용할 수 있어 큰 자금의 투입 없이 설립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셋째, 일제의 식민농업정책에 적극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조선흥업(주)과 동척, 이주일본인 등이 존재하였기 때문이었다. 단계공려수리조합은 금호면 면의원, 조선흥업(주), 동척, 이주일본인인 사토 야스지(佐藤保治), 창녕 조씨 출신의 대지주 조규용 등에 의해 설립·운영되었다. 이주일본인 사토는 헌병 오장, 경찰 경부, 식산은행 주사 출신으로 1930년대 금호면 일대의 토지를 사들여 농업경영을 하던 인물이었다. 조규용은 단계공려수리조합 설립 후 조합장이 된 인물로 조합 구역 내 가장 많은 토지를 소유한 대지주였다. 대지주였던 조선흥업(주), 동척, 사토, 조규용 등은 단계공려수리조합 설립 이후 해방이 될 때까지 계속 평의원으로 활동하였다. 일제 말 전시체제기 단계공려수리조합이 설립되었으나 1939년, 1942년, 1943년 등 연속적으로 발생한 한해, 강제동원으로 인한 인구 유출, 각종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부재지주의 증가, 식량증산에 필요한 비료 사용 급감 등으로 인한 토지 황폐화에 따른 산미증식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단계공려수리조합은 3회에 걸쳐 조합 구역을 변경·확장하면서 전시체제기 식량증산이라는 식민농촌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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