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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호남사학회 역사학연구 역사학연구 제75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145 - 177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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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 분당 이후, 영광 지역은 西人이 다수였고, 東人은 소수였다. 그들은 정여립 사건 때 서로 화를 당하였지만, 임진왜란 때 손을 잡고 의병을 일으켜 향토수호에 나섰다. 선조 말기 北人 정권은 서인을 약화시키기 위해 成渾의 삭탈관작을 단행했다. 성혼 제자로 형성된 영광 서인은 크게 반발하여 신원상소를 올리는 데에 참여했다. 광해군 즉위 후 북인 출신 수령이 부임해 와서 영광 안에 북인 세력을 부식시켰다. 그 결과 향안 수정 때에는 북인과 북인 편을 든 서인이 대거 입록되었고, 그 과정에서 ‘범 북인’과 서인은 격렬한 갈등을 치루고 결국 향안을 파기하고 말았다. 바로 이어 중앙에서 폐모론이 일어나자, 영광의 ‘범 북인’은 폐모론 지지에 나섰지만, 서인은 은둔하거나 지지자를 공격하는 등 격렬하게 저항하였다.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영광 서인은 곧바로 축하시를 짓거나 축하상소를 올렸고, 폐모론에 참여한 자를 색출하여 고향에서 추방하거나 향안에서 제적시키는 작업을 진행했다. 바로 이어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서인들은 전국에서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켰다. 적폐 청산과 신질서 구축 과정에서 향권을 선점한 남쪽 사람들을 향해 북쪽 사람들이 대응한 결과, 영광 지역의 권력구도는 南黨과 北黨으로 조성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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