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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일본사상사학회 日本思想 日本思想 제36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131 - 163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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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우치 요시미는 1960년대 논단의 과제로 ‘메이지유신 백년제’론을 제창했다. 소외된 ‘민족’의 관점은 ‘과격한 내셔널리즘’을 형성할 수 있으므로, 서구파와 일본파가 대치 구도 속에서 내셔널 이슈를 선취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메이지유신 백년제’론은 1960년대 미제 ‘근대화’론과 조우하며 ‘근대=메이지’ 만들기, 나아가 근대화에 성공한 메이지 붐으로 전개됐다. 또 그것은 미일 냉전 공간의 비균질성을 가시화했다. 미국의 동아시아연구기관 그 자체였던 태평양문제조사회(IPR)는 ‘아시아・내셔널리즘’을 의제로 한 러크나우회의(1950) 이후, 매카시즘의 공격을 받던 끝에 해산했다(1961). 중국에 우호적이던 IPR이 소멸하자 미국의 아시아연구는 일본에 우호적인 아시아연구협회(AAS)의 몫이 됐다. 반면, 일본에서의 IPR(‘아시아・내셔널리즘’)은 ‘메이지유신 백년제’론으로 명맥을 유지하며 AAS(‘근대화’론)와도 내적 연속성을 지닐 수 있었다. 1960년대 논단을 찾은 것은 ‘메이지 100년’보다 ‘전후 20년’이 먼저였다. ‘종언’과 ‘허망’으로 거듭 부정됐던 ‘전후’가 소환되면서, ‘메이지유신 백년제’론은 ‘메이지 vs 전후’의 대립국면으로 들어섰다. 마침내 ‘메이지 100년’을 맞게 됐지만 다케우치가 우려했던 ‘과격한 내셔널리즘’은 보이지 않았다. ‘근대화’론과 고도경제성장의 지적・물적 지원사격 속에서 일본은 경제내셔널리즘에 의거해 국민국가의 기반을 다져갔던 것이다. 그만큼 경제내셔널리즘의 대두는 내셔널 이슈의 선취라는 다케우치의 사상적 시도의 가능성과 한계에 관한 검증을 지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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