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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욱재 (목원대학교)
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77호
발행연도
2019.11
수록면
271 - 298 (28page)
DOI
10.21490/jskh.2019.11.77.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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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학계에 알려지지 않았던 대종교의 역사인식의 다른 흐름을 검토, 분석하였다. 20세기 초 대종교는 단군・단군조선의 역사성 강조와 개천절 도입 등으로 민족 정체성 수립에 기여를 하며 1910년대 민족주의 사학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단군과 단군조선의 역사성 강조라는 대종교의 역사인식은 대종교 2대종사 김교헌에 의해 수립되었는데, 이런 인식과 다르게 기자와 기자조선의 역사성을 부정하지 않은 역사인식도 초기 대종교에 존재하고 있었다. 19세기 말엽까지도 단군과 단군조선 못지않게 기자와 기자조선의 역사성을 중요하게 다루었으며, 보수유림의 경우 기자 숭배 의식은 더욱 컸다. 그런데 20세기에 들어오면서 민족 정체성 만들기의 일환으로 단군・단군조선의 역사성 강조와 함께 기자・기자조선의 배제가 나타났다. 이런 경향을 선도한 것이 대종교였으나, 초기 대종교에는 기자와 기자조선의 역사성을 인정하는 흐름도 분명 존재하였다. 그것을 보여주는 자료가 백봉교단이 나철에게 전해준 『단군교오대종지포명서』와 박은식이 저술한 『대동고대사론』이었다. 1909년에 공개된 『단군교오대종지포명서』와 1911년에 저술된 『대동고대사론』은 대종교가 배제했던 기자・기자조선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었다. 『단군교오대종지포명서』는 기자조선의 국왕의 시호와 왕명 및 활동 등이 수록되었으며, 기자・기자조선의 역사성을 인정하되 단군조선에게 동화되었다는 관점을 유지하고 있다. 『대동고대사론』은 『단군교오대종지포명서』를 따라 기자와 기자조선의 역사성은 인정하였으나, 기자조선은 단군조선의 후예로 우리 민족과 완전히 동화되었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혔다. 그러나 『단군교오대종지포명서』에 기록된, 출처를 알 수 없는 기자조선 국왕의 왕명・활동 등의 내용은 수용하지 않았다. 초기 대종교에 존재하던 기자・기자조선의 역사성 인정은 바로 김교헌에 의해 부정되었고, 단군・단군조선의 역사성 강조와 기자・기자조선의 배제가 대종교의 주류 역사인식이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한국학’의 내용을 구성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대한제국기 단군 단군조선과 기자 기자조선의 역사 서술의 특징
3. 『단군교오대종지포명서』와 『대동고대사론』에 보이는 기자조선
4.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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