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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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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포은학회 포은학연구 포은학연구 제25권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77 - 112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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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주는 고려말 원명교체기에 외교활동에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였으며 특히 친명사대 외교에 공을 들였다. 송시열은 이러한 점에서 정몽주를 높이 추숭했다. 정몽주의 ‘친명사대’(親明事大) 의식과 활동에 대한 송시열의 평가와 추숭 내용을 통하여 정몽주와 송시열이 지닌 친명의식과 중국사대(中國事大)의 의의와 현실적 단면을 이해할 수 있다. 정몽주와 송시열은 문화 선진인 중국[중화문명]에 나아가고자 하는 기대는 높았으나, 실제 국제외교 현장은 그렇지 못했다. 또한 정몽주와 송시열이 처한 상황이 달랐다. 정몽주는 14세기 원명(元明) 교체기에 강자로 부상하는 명과 명분론적인 관계를 형성하여 원의 억압적인 종속관계를 벗어나 고려의 자주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정몽주가 행한 친명사대의 배경은 정통론과 화이론을 외교정책에 적용했다기 보다는 남경 사행을 통해 체험한 명의 국력에 의거하여 선택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정몽주는 강대국 명과의 동맹관계로 원의 군사 위협을 벗어나, 고려국의 내정 개혁과 자주권을 확보하려는 실리적인 외교방책을 제시한 것이다. 이에 비해 송시열의 명에 대한 태도는 ‘존군부’의 정신이 매우 강했다. 송시열은 명청(明淸) 교체기에 처하여 임진왜란 때의 ‘재조지은(再造之恩)’에 대한 신하국으로서 입장을 유지하여 조선의 자주성을 유지하고자 했다. 정몽주는 실리적 측면에서 사대외교를 시행하였고, 송시열은 명분론적 측면에서 사대관계를 시행하고자 했다고 판단된다. 정몽주는 현실외교에 주자의 화이론 보다는 ‘이소사대’(以小事大)를 통한 보국(保國)의식, 송시열은 대일통의 인륜과 명분(名分)의식에 입각한 자주정신이 강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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