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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서예학회 서예학연구 서예학연구 제36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179 - 203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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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14세기에 살았던 예찬(倪瓚:1301~1374)의 시(詩)ㆍ서(書)ㆍ화(畵) 일률(一律)에 관한 회화 미학을 밝히는 데 목적이 있다. 문학(시)과 예술(서화)의 일률은 14세기에 가장 혁신적이면서 당대의 주류(主流)를 이룬 예술 경향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시·서·화 일률의 시도는 이미 북송시대에 소식이 회화를 문(文)으로 인식하여 시도하였지만, 문학적이며 풍부한 의경(意警)의 미가 잘 드러난 시대는 원나라이다. 원대에는 이민족인 몽골족이 한나라를 지배하였기에 한족에게는 매우 불우한 시대였다. 그리고 과거제도도 시행되지 않아서 학식과 지식을 갖춘 많은 사대부가 서재, 정원, 산수 등에 은거하여 자신의 흥에 따라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며 글씨를 쓰기도 했고 또 아집(集團) 문화 활동으로 학문, 문예, 예술 비평을 하여 당대의 미의식을 선도해 나갔다. 특히 조맹부(趙孟頫)로부터 시작하여 가구사(柯九思), 양유정(楊維楨), 탕후(湯垕), 사대 화가[황공망, 예찬, 왕몽, 오진] 등이 원나라 미의식을 선도해 나갔으며 이 당시에는 화원 제도뿐만 아니라 사승(師承)의 관계도 없었기 때문에 고의(古意)예술과 개성주의인 사의(寫意) 예술이 가장 부흥한 시기였다. 이중에서 시·서·화 일률로 인해 회화에서 가장 의경(意境) 미가 풍부한 문인은 예찬이다. 그의 간결한 자연의 형상에는 허실(虛實), 유무(有無)를 통해 그의 시대정신과 자신 인생의 경험, 사상이 함께 융합되어 자유롭게 그의 뜻이 표현되었다. 그는 그림을 그리거나 시를 읊은 것에 대해서 구체적인 물상과 음률은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고 서예와 회화에 대하여 기술이 능숙하든지 졸렬하든지에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단지 그는 그 형상 너머 그의 뜻을 표현하는 것을 중시했다. 그렇기에 그는 스스로 독립적인 자신의 기교와 법칙을 가지게 되었고 아울러 문학과 예술이 상호 융합되어 풍부한 심오한 담(淡)의 의경 미가 회화에 표현되었다. 이러한 예술의 실천은 인간개성의 주체적 의식을 각성시키게 되었고 나아가 이전 시대의 의례적 질서로부터 그를 해방했다. 이점이 예찬에게 가장 커다란 창조적 예술성취이며 그의 회화 자체로도 일품이지만, 서예와 시 또한, 일품(逸品)의 예술임을 후대에 많은 사람이 품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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