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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민족문화연구 민족문화연구 제87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97 - 129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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印璫은 공민왕대에 이르러 무장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먼저 그는 萬戶, 捕倭使의 직책으로 왜구를 격퇴하였다. 그러다가 공민왕 3년에는 아들인 印安과 함께 원의 남정군 출정에 참여하였다. 그것은 물론 원을 돕는 행위였으나 원의 내부 사정을 소상하게 파악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리하여 돌아와서는 그 사정을 공민왕에게 자세히 보고함으로써 개혁을 수행할 수 있는 배경을 제공하였다. 이에 공민왕은 동왕 5년 친원 핵심 세력인 기씨 일당을 제거한 직후 영토 수복에 착수하였다. 공민왕은 두 방면으로 영토 수복을 명하였다. 하나는 동북면 방향이고 또 다른 하나는 서북면 방향이었다. 密直副使 柳仁雨를 東北面兵馬使로, 前 大護軍 貢天甫, 前 宗簿令 金元鳳을 副使로 임명하여 雙城 등 지역을 수복하게 하였다. 한편 인당과 강중경을 서북면병마사로 삼고 신순, 유홍, 최영, 최부개를 부사로 삼아 압록강 서쪽 8참을 공격하게 하였다. 그러나 燕邸隨從功臣이었던 강중경과의 불화로 그를 제거하였다. 이어 그는 원 나라의 연호인 至正 연호의 사용을 정지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 과정 속에서 인당은 큰 역할을 하지는 못했다. 한편 서북면으로 출동한 인당은 군사를 거느리고 압록강을 건너 婆娑府 등 3站을 공격하여 점령하였다. 이 작전은 원의 군사적 출동에 대비하는 한편 원에 오가는 교통로를 차단함으로써 기철 일당의 제거나 쌍성총관부 공격 등의 고려 내부 사정이 원에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처였다. 그러나 고려에 오다 체포되었던 원의 사신이 도망하여 원에 돌아감으로써 고려의 내부 사정이 다 알려지게 되었다. 이 소식을 접한 원에서는 사신을 파견하여 자신들의 영토를 점령한 것에 대해 힐책하면서 대군을 동원해 침략할 것이라 위협하였다. 이에 공민왕은 염제신의 계책을 받아들여 인당의 목을 베어 사과하였다. 특별히 인당 한 사람만을 처형한 것은 자신의 심복이었던 강중경을 죽인 것에 대한 보복의 의미도 있었다. 이에 원은 고려의 사과를 받아 주었고 고려에서는 이에 감사하는 표문을 올리기까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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