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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대구사학회 대구사학 대구사학 제130권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243 - 280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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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1340년대 원제국 내 정치 세력의 동향과 충목왕대 整治都監의 치폐 과정, 공민왕 즉위 배경 등을 검토하여 1356년 공민왕의 소위 ‘反元改革’을 재검토해 보았다. 1340년 바얀(伯顔)의 실각으로 고려 공녀 출신 奇氏는 원제국의 제2황후로 책봉되고, 고려에서는 기씨 일족의 聲勢를 가져왔다. 1340년대 충혜왕이 겪은 정치적 비운은 표면상 엘테무르와 바얀 간의 알력에 인한 것으로 보이지만 궁극적으로 그를 유배 보내고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기황후세력이었다. 충혜왕의 비극적 죽음을 둘러싼 순제와 기황후의 갈등과 알력은 충목왕대 설치된 整治都監의 운영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1349년 톡토의 復相을 계기로 일단락되는 듯한 양자 간의 갈등은 1354년 톡토가 실각되고, 1356년 기황후의 內禪 시도로 다시 긴장상태가 되었다. 이런 관계에서 볼 때, 충정왕을 갑자기 폐위시키고 공민왕을 즉위시킨 ‘元’의 권력은 기황후가 아니라 순제 토곤테무르이고, 곧 이를 배경으로 공민왕 즉위년에 조일신은 기씨일족과 고용보를 주살하기 위한 난을 일으킬 수 있었다. 요컨대 충혜왕의 죽음은 여원 양국 관계에서 매우 충격적인 사건으로 제국 내 기황후와 아유시리다라의 제위 탈취 시도되자 同母兄 충혜왕 죽음에 대한 宿怨, 기철을 핵심으로 하는 기황후세력의 고려왕실에 대한 치명적 위협이 1356년 공민왕이 소위 ‘반원개혁’을 일으킨 근본적 배경이었다. 만약 왕권을 위협하는 기철 일당을 제거하는 것이 공민왕의 궁극적 목표였다면 1356년의 시도는 성공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순제와 황후의 갈등과 대립, 사후 순제의 묵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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