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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문경호 (공주대학교)
저널정보
호서사학회 역사와 담론 역사와 담론 第97輯
발행연도
2021.1
수록면
235 - 268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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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보신안지』는 보령현감 정권이 주도하고, 고을의 유생들이 참가하여 완성한 18세기 중반의 사찬읍지이다. 초간본은 사라지고, 필사본만 ‘신안읍지’ 또는 ‘보령군지’라는 이름으로 전하고 있다. 『증보신안지』가 발간된 18세기 중반은 지방의 수령과 재지사족들이 사찬읍지를 활발히 발간하던 시기였다. 정권은 재원찰방, 무장현감, 청양현감 등을 거칠 때마다 해당 고을의 읍지를 편찬하였다. 그것은 정권의 읍지 편찬을 중시한 개인적인 특성과 양난 이후 해이해진 향촌질서를 바로잡고, 가문의 위상을 높이고자 했던 사족들의 의도가 잘 부합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신안(新安)은 뉴성(杻城)과 함께 보령의 별호였다. 그러나 두 별호가 생겨난 배경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 글에서는 신안이라는 지명의 근원을 모색하고, 보령현감 정권이 읍지 발간을 주도한 목적과 당시 상황에 대해 조명하였다. 또한, 수록된 인물과 읍재, 재영 등의 조항을 분석하여 신안읍지의 특징과 초간본의 형태를 추정하였다.
현존하는 『신안현지』는 1748년에 처음 제작된 것을 1907년 이전에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때 새로 추가된 조항은 인물 조에 수록된 조병흥과 그의 두 아들, 그리고 경대동(京大同) 혁파 등이다. 나머지는 대부분 1648년을 시점으로 그 이전의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조선 시대 보령은 수영과 인접해 있는 작은 고을이었다. 그러나 정권은 부임하자마자 읍지의 편찬을 서두르고, 향촌 교화에 힘썼다. 아마도 그는 그가 통치하는 고을에 성리학적 질서를 정착시킴으로써 풍속을 바로잡고, 소학을 보급하여 수령과 재지사족을 중심으로 하는 성리학적 사회를 구축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지명 ‘신안(新安)’의 기원
Ⅲ. 『증보신안지』의 편찬 배경
Ⅳ. 『증보신안지』의 편찬 시기와 특징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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