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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종수 (단국대학교)
저널정보
동북아역사재단 동북아역사논총 동북아역사논총 제71호
발행연도
2021.3
수록면
191 - 227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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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 만발발자 유적은 고구려 물질문화의 기원 및 계승 관계를 밝힐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주고 있다. 특히 기원전 4~3세기경에 출현한 토광묘와 집장묘는 선고구려문화의 기원과 백제 계승 관계를 밝힐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한 자료이다. 이 유적에서는 모두 21기의 토광묘가 발견되었는데, 모두 관곽을 사용하지 않은 순수토광묘이며, 이른 시기의 A조 토광묘와 늦은 시기의 B조 토광묘로 구분된다. 집장묘인 20호와 21호는 하나의 묘광에 4인과 35인이 매장되어 있다. 출토유물을 통해 볼 때, 20호는 지배층 무덤, 21호는 일반 계층을 집단 매장한 무덤으로 볼 수 있다. 무덤의 시간적 추이는 기원전 4세기경 처음으로 만발발자 유적에 A조 토광묘가 출현하며, 이후 B조 토광묘로 변화하면서 기원전 3세기경까지 석관묘, 대개석묘 등과 함께 사용되다가 기원전 2세기경에는 적석묘로 전환되고 있다.
만발발자 토광묘의 기원은 고조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정가와자유형에서 찾을 수 있다. 기원전 5세기경 요서 지역에서 요동지역으로 유입된 토광묘가 점차 주변으로 확대되면서 기원전 4세기경에는 혼강 유역까지 전파되었다. 만발발자 유적 토광묘 사용집단은 체질인류학적으로 고동북유형에 속하며, 당시 요동과 장백산맥 일대에 거주하던 고조선 혹은 예맥계 종족으로 볼 수 있다. 유적에서 다량의 설치류 동물 뼈와 가공에 사용되는 석기, 운송에 사용되던 말 재감 멈치 등이 출토되고 있고, 당시 이 지역의 특산품이 모피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만발발자 유적의 성격은 혼강 유역의 모피 중간집하지로 볼 수 있으며, 주민집단은 주로 주변지역에서 사냥한 모피동물을 수합하고 가공하여 공급하는 일에 종사했던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집장묘는 비정상적 사망에 의한 결과로, 전염병이 발생하여 많은 사람이 사망하는 긴급 상황에서 조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합민망합 유적과 1910년대 동북지역 페스트 유행 자료를 통해 보면 설치류 동물과 관련된 페스트 창궐과 관련될 가능성이 가장 높으나, 기타 다른 전염병에 의한 결과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선고구려문화의 백제 계승과 관련하여 석촌동고분군 대형 토광묘와 비교해본 결과 문화내용과 시간적으로 동질성이 확인되지 않아 계승성을 연결시키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조사 현황
Ⅲ. 무덤의 특징과 계통
Ⅳ. 무덤의 성격 및 후대로의 영향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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