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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유바다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호서사학회 역사와 담론 역사와 담론 第98輯
발행연도
2021.4
수록면
197 - 227 (31page)

이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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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10월 26일 淸 하얼빈에서 일어난 안중근의 이토 사살 사건을 다룬 국내 언론의 보도 태도는 처음에는 소극적이었다. 《皇城新聞》은 오히려 안중근을 두고 行凶者라고 하는 등 일제 권력에 압도당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는 안중근이 설파한 “동양평화”와 “한국독립”을 근거로 들어 일진회 등의 합방 또는 병합에 관한 논의를 비판하기도 하였다. 심지어 《大韓每日申報》는 하얼빈의 총성을 직접 거론하면서 이완용을 박쥐로 취급하여 안중근의 의거를 본받을 것을 촉구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국내 언론의 보도는 국내 일반에도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鄭喬는 『大韓季年史』를 통하여 이들 보도를 적극적으로 인용하여 안중근의 이토 사살 사건을 후세에 남기고자 하였다. 黃玹 또한 『梅泉野錄』을 통하여 민간에서 이 사건을 쾌거로 받아들이고 있었음을 밝혔다. 이와 같이 안중근의 이토 사살 사건은 국내 언론의 보도를 통하여 병합 직전 한국 사회에 “한국독립”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목차

국문 초록
Ⅰ. 머리말
Ⅱ. 이토 사살 사건에 대한 국내 주요 언론의 보도
Ⅲ. 국내 주요 언론의 보도 내용에 지식인의 반응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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