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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대영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저널정보
한국목간학회 목간과문자 목간과문자 제26호
발행연도
2021.6
수록면
147 - 165 (19page)
DOI
10.35302/wdis.2021.06.26.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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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2020년 부소산성 재난방재시스템 구축공사 중 새롭게 확인된 명문자료를 중심으로 출토 현황과 그 편년적 위치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부소산성은 1980년부터 국립문화재연구소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하였으나 아직 城의 내부는 약 6% 정도만 조사가 진행된 상황이다.
이번 재난방재시스템 구축 공사 중 확인된 유구에 대한 긴급발굴조사를 진행하면서 부소산성 내부 평탄지에 위치하고 있는 유구의 개략적인 정보를 알 수 있었는데, 이 중 부소산성 중앙부에서 서쪽으로 약간 편향되어 위치하는 궁녀사 남쪽 지점에서는 수많은 백제토기와 함께 문자자료가 확인되었다.
지금까지 확인된 문자자료는 ‘乙巳年三月十五日牟尸山菊作’과 ‘北舍(북사)’가 있다. ‘乙巳年三月十五日牟尸山菊作’의 명문은 초반부는 토기의 제작시기, 중반부는 만든 사람에 대한 기록, 마지막 ‘作’자의 뒤에는 제작된 토기의 기종이 적혀 있는 것으로 추론된다. 이와 유사한 명문 형태는 부여 능산리 사지 출토 토기와 익산 왕궁리 유적 출토 개배에서도 확인된다. ‘北舍’명 토기는 부여 관북리 유적, 쌍북리 유적, 금성산, 궁남지, 익산 토성 등에서 확인된 바 있는데, 토기가 출토된 유적은 공공적 성격을 가진 건물이나 중심 시설에 속하는 부속 건물로 이해되고 있다.
백제가 사비로 천도(538년)한 이후 ‘乙巳年’은 백제 사비기에는 585년, 645년, 백제가 멸망한 뒤로는 705년이 해당된다. 토기가 출토된 궁녀사 지점은 백제시대 문화층이 2번에 걸쳐 조성되었는데, 명문토기는 이 중 上層에서 확인되었다. 함께 출토된 유물은 보주형 뚜껑과 전달린 토기의 비율이 높은 것이 특징적이다. 이와 같은 유물 구성은 관북리 유적 ‘北舍’명 토기가 출토된 건물지군의 유물 구성과 매우 흡사하다.
관북리 유적에서 ‘北舍’명 토기가 출토된 지점은 유적의 북동쪽으로 부소산록 축대의 남쪽에 위치하는데, 건물지군은 관북리 일대가 대단위 성토(6세기 후반~7세기 초반)된 후 조성된 제2생활면에서 확인된다. 그리고 ‘北舍’명 토기가 출토된 궁남지는 무왕35년(634)에 조성되었고 백제의 익산지역 경영 역시 백제 무왕(600~641) 때 본격화 된다.
명문토기들과 함께 공반된 토기는 백제 토기가 분명함과 동시에 출토된 정황과 토기의 편년관으로 볼 때 이들 토기자료를 백제가 멸망한지 반세기 정도 지난 8세기 이후로 편년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앞에서 살펴본 자료를 종합해 보면 명문토기에서 확인되는 ‘乙巳年’은 백제 사비기 후기인 645년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목차

국문초록
I. 머리말
II. 부소산성 명문토기 출토유구
III. 부소산성 신출토 銘文자료
IV. 명문토기의 편년적 위치
V.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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