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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연학 (국립민속박물관)
저널정보
서울민속학회 서울민속학 서울민속학 제7호
발행연도
2020.12
수록면
105 - 154 (5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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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잡상의 형태와 개수의 변화 양상을 살피는 것을 연구목적으로 삼았으며, 고려시대 불화 및 출토 잡상, 조선시대 의궤와 기록화, 『어유야담』(1621), 『상와도』(1920), 근대 사진자료 등을 통해 분석하였다.
잡상은 잡귀나 요괴를 물리치기 위한 벽사 기능 이외에도 궁궐 주요 건물, 도성 정문, 종묘, 성균관, 동묘, 왕릉의 정자각 등 한정적으로 설치한 점을 보면 건물의 위엄과 권력을 나타내기도 한다. 또한 잡상은 전각의 규모에 따라 잡상 개수의 차이를 두었다. 즉 법전과 편전, 중심건물과 보조건물, 사용자의 지위, 전각의 중요도 등에 따라 잡상 수를 차별화를 두어 권위를 나타내었다.
한국의 잡상은 회화나 금동탑, 출토유물을 통해 고려시대부터 등장하기 시작하며, 공통적으로 새가 등장한다. 새는 하늘과 땅을 연결해주는 매개체이자 솟대의 오리처럼 화재예방을 위해 전각에 올렸을 것이다. 여말선초 시기의 사찰인 회암사에서는 인물형, 반인반수형, 동물형 등 다양한 유형의 잡상이 발견되었는데, 일부는 조선후기 잡상에 영향을 주었고, 동물형 잡상은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
잡상에 대한 명칭은 조선시대 『어우야담(於于野談)』(1621)과 『창덕궁수리도감의궤(昌德宮修理都監儀軌)』(1647)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민간의 야담을 모아서 만든 『어우야담』에는 10개의 잡상이, 『창덕궁수리도감의궤』(1647)에는 5개의 잡상이 등장하며 잡상의 명칭 부여는 민간에서 더욱 활발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두 책자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이름이 손오공인데, 조선시대 『서유기』가 널리 보급되면서 나머지 잡상들의 명칭도 소설의 등장인물로 불린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로 저팔계, 사오정 등의 잡상에서 해당 인물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1920년경 제작된 저자 미상 잡상 도록인 『상와도(像瓦圖)』(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에 처음으로 잡상 명칭과 그림이 함께 등장한다. 현재 궁궐 건물의 잡상은 『상와도』의 것을 참고하여 제작하고 있는데, 『상와도』에 그림이 없는 나토두는 영원히 존재하지 않게 될 운명이다.
잡상의 개수는 홀수로 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짝수로 올린 사례가 고려 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모두 나타난다. 따라서 양수와 음수의 개념과 상관없이 올린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잡상의 배열순서는 일정한 규칙이 있었을 것이나, 현재 궁궐 잡상의 배령순서는 제각각이고, 잡상도 동일한 것이 중복되어 올렸다. 현재 각각의 잡상을 배열한 것은 창덕궁 인정전에서만 볼 수 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잡상의 유형
3. 잡상 개수와 배열
4.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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