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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장인모 (가천대학교)
저널정보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한국독립운동사연구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75집
발행연도
2021.8
수록면
83 - 125 (4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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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932년 충청북도 지역 공립보통학교 교사 박인섭과 류필열이 일본 신흥교육연구소와의 연대 하에 진행한 프롤레타리아 교육운동을 검토한 것이다. 박인섭과 류필열은 농촌의 보통학교 교사로서 농촌 경제의 파탄과 수업료 미납에 따른 중도 퇴학과 같은 교육 현장의 비참한 현실을 목격하면서, 민족의 해방과 사회변혁을 지향하게 되었다.
1930년 일본에서 프롤레타리아 교육을 연구·선전하는 단체로서 설립된 신흥교육연구소는 일제의 조선 식민지배와 식민교육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였으며, 식민교육에 대한 투쟁을 자신의 임무로 설정하였다. 또한 일본 제국주의에 맞선 투쟁을 함에 있어서 식민지 조선인과의 연대를 중시하였다. 이러한 입장에 따라 신흥교육연구소는 박인섭을 프롤레타리아 교육운동을 하도록 유도하였으며 그와 연대 관계를 형성하였다.
이후 박인섭은 신흥교육연구소의 지원과 지도를 받으면서 프롤레타리아 교육운동을 진행하였으며, 류필열은 박인섭의 조언을 받아 가며 교육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들은 자치회의 조직과 투쟁, 창가와 작문 교육, 농촌 경제 조사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학생들에게 민족의식과 계급의식을 고취하였으며 박인섭은 무산아동만을 조직화, 의식화하는 활동도 펴나갔다. 이러한 교육을 통하여 이들은 식민지 아동을 민족적, 계급적으로 각성시켜 민족해방운동의 주체로 키워내고자 하였다.
신흥교육연구소와 박인섭의 연대 관계는 일방적인 상명하달 관계가 아니었으며, 서로 비판과 의견을 주고받는 상호 소통 관계였고, 동지적 관계였다. 또한 신흥교육연구소는 조직을 신흥교육동맹으로 전환해 가는 가운데, 박인섭과 함께 조선에 동맹 지부를 설치하려 하였다. 이는 이들이 일본과 조선을 연결하는 조직적 틀을 만들어 연대 관계를 지속하려 했음을 보여준다.

목차

1. 머리말
2. 민족해방과 사회변혁을 위한 교육운동의 지향
3. 신흥교육연구소와의 반제국주의 국제 연대의 형성
4. 프롤레타리아 교육운동의 전개
5.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요약
Abstract

참고문헌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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