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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원준 (인천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중국학회 중국학보 중국학보 제95호
발행연도
2021.1
수록면
335 - 369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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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중국 사회에서는 전후 중국의 수도를 어느 곳에 건설할 것인가를 놓고 다양한 방면의 전문가와 지식인, 정치인이 참여한 논쟁이 전개되었다. 여러 도시가 후보지로 제시되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西安과 北京, 南京이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다. 논쟁에 참여한 사람들은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동원하여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려 하였고, ‘역사’는 가장 중요한 근거 중의 하나였다. 西安이나 北京에 수도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들은 이 두 곳이 전통시대 통일제국의 수도였고, 이 시기에 중국은 대제국을 건설하여 장기간의 안정과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반면, 南京에 수도를 건설했던 왕조는 대부분 북방민족의 침략으로 남하한 정권이었고, 대부분 단명하거나 분열 국면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역사’ 담론을 동원한 논쟁에서 南京 建都論은 불리할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비판에 대한 대응 논리를 제시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南京 建都를 주장한 사람들은 대체로 다음의 네 가지 측면에서 ‘역사’ 담론을 재구성하였다. 첫째, 南京은 수도로서 오랜 역사를 보유하고 있으며, 南京에 建都한 왕조들이 약세를 면하지 못한 것은 ‘정치’의 문제이지 ‘수도’의 문제가 아니다. 둘째, 宋代 이후로 江南지역이 발달하면서 중국의 경제적?문화적 중심은 남방으로 이동하였고, 남북관계의 優劣이 역전되었다. 셋째, 아편전쟁 이후 근대 중국의 역사는 남방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중국에 대한 위협의 방향이 북방의 대륙에서 남방의 해양으로 바뀌었고, 남방은 근대 문명 유입의 핵심 통로가 되었고, 아울러 민족혁명의 거점으로서 그 역사적 위상이 강화되었다. 넷째, 南京 建都는 孫文의 뜻(‘總理遺敎’)이므로 이를 준수해야 한다. 전통시대의 전성기에 대한 기억은 강한 설득력을 갖고 있었고, 이 점에서 南京은 ‘역사’ 담론의 경쟁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南京 建都를 주장한 사람들은 기존의 ‘역사’ 담론에 대응하기 위하여 중국의 과거에 대한 해석을 재구성하여 새로운 역사상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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