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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황만기 (안동대학교)
저널정보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소 南冥學硏究 南冥學硏究 제68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139 - 167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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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하재문의 삶과 시에 포커스를 맞추어 연구를 진행하였다. 학업을 위한 입문 단계에서부터 완성단계에 이르기까지 몇 차례의 거주지 이동은 그가 추구하고자 한 학문적 인프라 구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진주 九台에서 태어난 그는 우선 남명 조식의 강학 공간인 山天齋에서 남명학파의 인물들과 『남명집』을 교정하며 학문연구와 강학 활동에 주력하였다. 그의 이런 활동은 남명학파의 결집을 가져왔고 남명학을 계승발전 시키는 효과도 발휘하였다. 그는 또 족조 하달홍에게 양질의 교육을 받기 위해 하동의 安溪로 이주하였다. 안계 마을은 하홍도에 의해서 개척된 학문적 공간임과 동시에 진주하씨의 남명학과 주자학 형성에 지분을 제공한 의미있는 學村이었다. 하재문은 스승인 하달홍이 운명하자 거주지를 安溪에서 다시 士谷으로 옮겼다. 사곡으로 온 그는 東寮라는 書齋를 지어 후진양성에 주력하였다. 강학 공간 역시 山天齋에서 慕寒齋, 모한재에서 다시 東寮로 옮기는 양상을 띠었다. 하재문의 시는 꾸밈을 일삼지 않고 沖澹하고 순수하여 속세를 벗어난 흥취가 있었다는 점이다. 또 시작에 있어서 변체시를 많이 창작했다는 것과 詩會 활동을 통하여 남명학의 결속을 이끌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하재문 시의 특징점 중의 하나는 잡체시에 관심을 보여 다향한 형태로 구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칠언율시 한 수에서 2구씩 끊어서 正名對, 同類對, 疊韻對, 連珠對를 사용하였다. 이것은 六對에서 雙聲對와 雙擬對를 제외한 것이다. 또한 오언절구 2수에서 한 수는 回文으로 읊었고 한 수는 隔句對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建除體, 回文體, 玉連還體 각 1수를 읊었으며, 1에서 10까지 숫자를 가지고 지은 數詩, 그리고 人名과 藥名을 가지고 읊은 잡체시도 있다. 한편 하재문은 산수 자연을 매우 좋아하여 方丈山·錦山·花岳·靈嶽 등의 名山과 華山亭·孤山亭·涵月亭·雷龍亭·矗石樓·神仙臺, 落水齋 등의 누정, 그리고 雙磎寺·靈嶽寺·龍門寺·菩提庵·多率寺·大源庵 등의 佛舍를 두루 유람하였다. 이는 1868년(39세)과 1877년(48세)에 方丈山 大源庵에서의 詩會, 1876년 錦山의 보리암 유람에서의 詩會(47세), 1888년 靈嶽의 靈嶽寺(현 多率寺)에서 詩會(59세) 등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들 詩會뿐만 아니라, 1894년 白雲洞에서의 修?(65세)는 벗들과의 친목을 도모함은 물론 그 궁극적 목적은 남명의 학문과 사상을 계승하고자 하는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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