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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병희 (한국교원대)
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85호
발행연도
2021.11
수록면
71 - 105 (35page)
DOI
10.21490/jskh.2021.11.8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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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사회는 불교의 영향을 크게 받아 不殺生과 不食肉이 생활문화로서 널리 자리하고 있었다. 승려들은 불살생과 불식육의 실천에 힘쓰는 한편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한 동물을 살려주는 放生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속인 가운데에도 불살생과 불식육을 적극 실천에 옮기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官人이 된 독실한 信佛者들은 살생을 피하기도 하고, 살생을 금하도록 건의하기도 했다. 국가 차원에서도 살생을 금하고 식육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한 경우가 많았다. 특히 好佛의 군주가 왕위에 있을 때 그런 조치를 여러 차례 취했다. 동물을 죽음에서 구해주거나 고통을 해소해주는 경우, 報應이 따른다는 관념이 널리 유포되어 있었다. 반면 동물에게 고통을 안겨준 경우에는 되갚음이 있다는 관념도 있었다. 이 때문에 살생에 종사하는 이들은 마음의 부담을 지고 있던 것 같다. 불살생과 불식육이 강조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주로 낮은 신분의 사람들이 살생에 종사했다. 楊水尺, 禾尺과 豚市의 상인이 그러했다. 無賴之徒와 惡小로 불리는 이 가운데 우마의 도축에 종사한 자, 또 鷹坊 소속으로 우의 도축에 종사한 이들도 낮은 신분 출신이었다. 국가의 제례나 각종 연회에서 육류가 소비되고, 개인의 식생활에서도 동물성 단백질이 필요했으므로, 살생과 식육은 불가피했다. 그렇지만 불살생과 불식육이 강조되고 있었기 때문에 가축의 도축과 야생 동물의 사냥은 어느 정도 제약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고려말 조선초 불교의 사회적 영향력이 줄어들고 人本主義를 강조하는 성리학이 확산되면서 불살생・불식육의 분위기는 크게 퇴조할 수밖에 없었다.

목차

국문초록
1. 서언
2. 승려의 불식육・방생과 속인의 불식육
3. 국가의 불살생・불식육 정책
4. 동물 報應에 대한 관념과 살생자의 부담
5. 동물 살생 종사자의 사회적 처지
6. 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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