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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도연 (충북문화재연구원)
저널정보
백산학회 백산학보 백산학보 제115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39 - 75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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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성은 1711년(숙종 37) 三軍門의 군사를 동원하여 축성하였으며, 조선후기 발달된 축성기술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고고학적 조사사례가 적어 체성 이외의 성벽관련시설에 대한 연구는 미흡한 편이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지금까지 발굴조사가 진행된 배수시설․치성․墩臺 등 성벽관련시설을 중심으로 축조수법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남한산성․강화산성․수원화성․지방 산성과 비교하여 시기에 따른 축조기술의 변화와 중앙의 기술이 지방 산성에 미친 영향을 검토하였으며, 북한산성이 갖는 축성사적 위치를 도출하였다. 배수시설은 대체로 유사한 형태를 보이면서도 암반층을 굴착하여 성벽 하단부에 수구를 조성하고 있어 지형을 고려한 발달된 축조기술을 볼 수 있다. 치성은 이전보다 길게 돌출되는 변화가 보이며, 도성과 그 주변을 조망할 수 있는 높은 산 정상부에 배치되었다. 돈대는 성벽과 결합된 형태로 나타나며, 조선후기 중국 城制의 영향으로 강화도 일대에 도입되어 수원화성의 공심돈으로 발전하는 과도기적 요소로 이해할 수 있다. 1716년(숙종 42) 지방에 수축된 상당산성에서는 지형에 따라 체성의 높이가 다르게 나타나 북한산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기술의 전파는 전문 석공집단의 등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따라서 북한산성은 조선후기 축성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위치에 해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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