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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덕수 (한국학중앙연구원)
저널정보
한국실학학회 한국실학연구 한국실학연구 제39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138 - 176 (3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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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중국 국자감 입학 및 제과 응시를 통해 선진 문물을 습득하고 국제적 인재를 양성하는 데 주력했다. 삼국시대부터 시작된 중국 유학은 고려 말까지 지속되다가, 공민왕 때 金濤가 명나라 제과에 합격한 것을 끝으로 한 번도 재개되지 않았다. 명 환관과 사신의 살해, 공민왕 시해 사건 등이 겹치면서 양국 관계가 경색된 데다가 명 태조가 <皇明祖訓>에서 조선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표명했기 때문이다. 고려 조정의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중국 유학의 염원은 수포로 돌아갔다. 조선에서도 학문의 심화, 漢語와 吏文 습득을 위해 명에 유학생을 파견하고 싶었다. 태종 때 처음 논의를 시작했다가 세종과 세조, 중종 연간에는 외교문서를 통해 북경 국자감이나 요동 향학 입학을 공식적으로 요청했으며 임란 직전에도 유학에 대한 논의를 재개한 적이 있다. 명 측은 매번 터무니없는 이유를 대며 조선의 요청을 거부했다. 조선 후기 문인들 중에 중국 유학의 전통과 단절에 대해 의견을 개진한 자가 많다. 柳夢寅, 李瀷, 朴趾源, 丁若鏞, 李圭景, 金允植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실학자로 일컬어지는 인물이다. 이들은 공히 조선 선비의 의기가 편협해지고 재주와 안목이 위축됐으며 문학과 학문까지 침체됐다고 진단하면서 그 주요 원인을 중국 유학 단절과 그로 인해 심화된 조선 사회 전반의 폐쇄성에서 찾고 있다. 조선의 학술과 문예 수준을 중국 유학의 단절로서 설명한 일련의 견해들은 조선 지성사의 일면을 이해하는 데 유의미한 단서를 제공한다. 자국 학생을 해외로 적극 파견함으로써 견문을 확장하고 선진 문화를 흡수하는 것이 부국강병의 초석이라는 주장은 작금의 현실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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