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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윤상열 (한림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대학회 선사와 고대 선사와 고대 제59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81 - 104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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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는 광개토왕릉비에도 보이듯이 천하관과 연계되는 일정한 중심의식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고구려에 여러 방면으로 영향을 주었던 부여 역시 초기적인 중심의식을 갖추었으리라고 가정할 수 있다. 부여의 건국신화인 동명전승은 여러모로 해모수신화와 비슷한데 이는 양 신화가 공통적인 전승에서 갈라져 나와 각각 중국과 국내전승의 형태로 변형되었기 때문이다. 즉, 동명과 해모수는 같은 대상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점의 발생은 국내전승에서 중국 측 사료에 정착할 때 원래 신화의 신성성을 제거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부여시조의 원래 신화 형태는 해모수 신화의 내용대로 하늘의 혈통을 받은 지상 최고의 중심존재를 형상화한 것이었다. 부여의 지배구조를 통해서는 강력한 왕권이 존재했고 비록 고조선처럼 분봉적 요소가 분명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사출도’의 예에서 보이듯이 지방세력들도 일정한 권력분점을 바탕으로 왕권으로 집약되는 특성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대외적으로 부여는 고조선 멸망 이후의 세력공백을 이용해 고조선의 ‘동방세계’ 상당부분을 자신의 영향권 아래 놓았고, 따라서 부여가 동방세계를 자신을 중심으로 인식했다는 점을 의식한 중국 측 기록에는 이러한 부여 帝王의 위상이 ‘天子’로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부여의 건국신화­지배구조­대외관계를 검토함으로써 간접적으로나마 부여의 중심의식의 양상을 파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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