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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수정 (중앙대학교)
저널정보
민족음악학회 음악과 현실 음악과 민족 제57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11 - 50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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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양악대가 음악 연주를 시작한 지 올해로 약 118년이 되었다. 서양 악대 도입 초창기인 대한제국에서는 1900년 군악대, 1907년 제실음악대(帝室音樂隊)라는 이름으로 설치되었다가, 이후 일제강점기에는 이왕직양악대라는 이름으로 유지되었다. 우리나라의 근대화 과정에 대한제국 군악대, 제실음악대와 이왕직양악대가 궁중의 공식적인 악대로 활동하였다는 점에서 근대 궁중음악 변천에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들의 활동이 궁중음악계와 대중음악계에 서양음악의 보급과 육성에 기여한 역할은 지대하였으며, 군악대와 양악대를 통해 배출된 음악인들이 각급 학교 밴드부와 사립 악단에서 음악활동을 하여 브라스 밴드를 비롯한 서양식 악대의 보급과 육성, 서양음악의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따라서 그간의 연구는 양악 도입기에 해당하는 1890년-1910년의 양악대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집중되었고, 양악대의 창설, 악기편성, 연주곡목 및 중요성 등이 밝혀져 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이왕직양악대에 대해서는 부수적으로 간단히 언급하는 데에 그치고 있으며, 활동 내용은 거의 언급된 적이 없다. 본 연구는 이왕직양악대의 역사적 전개과정 및 조직체계, 운영 방식, 공연 활동 등을 살펴보았다. 이왕직양악대는 1911년 활동을 시작하여 1919년 해산되기까지 활동 기간이 매우 짧지만, 양악사장, 양악사, 양악수장, 양악수의 체제를 갖추고, 40-50명 내외의 악대로 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서양식 악대는 대한제국에서 국가적 차원에서 정식으로 서양음악을 수용하면서 궁중악대의 일부로서 국가와 왕실의 행사를 담당하였다. 이왕직양악대는 대한제국 군악대의 전통을 이어 이왕직 장시사에 소속되어 의식에서의 음악을 담당했다. 하지만 국가 음악으로의 기능을 제대로 펼치기도 전부터 국권이 침탈되면서 역할이 축소되어 군대 음악 또는 국가 음악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는 못하였다. 또한 일제강점기 일본궁내성과 조선총독부의 감시하에 이루어졌던 이왕직양악대의 활동은 대한제국기 군악대보다 더 왜곡되었고, 친일적인 행적을 보여주었다. 식민지하 탑골공원, 창경궁 및 공진회 등에서 일본국가인 「기미가요」와 일본 군대음악 및 일본음악을 연주해야 했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대중적인 공간에서 벌어진 음악활동을 통해 대중에게 서양음악적 이미지를 ‘국가’에서 주도적으로 형성하는 역할을 하였다. 서양음악의 유입과 확산은 다방면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양악대의 활동이 당시 한국음악계에 서양음악의 표상이 될 수는 없다. 군악대와 양악대를 통해 배출된 음악인들이 서양식 악대의 보급과 교육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고 음악적으로 성장하는데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는 점은 인정된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이왕직양악대와 같은 관속(官屬) 음악인의 활동은 서양음악의 성장 과정이기도 하였지만, 식민지적 근대의 비주체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조직적 한계가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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