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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영호 (경북대학교)
저널정보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영남학 영남학 제71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163 - 190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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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해자 2호 목간은 4면 문서목간으로 일찍부터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여기서는 제1행에 대해 기왕의 판독과 해석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대오지랑(大烏知郞)’은 ‘대조지랑(大鳥知郎)’으로 읽어야 하며, ‘대오(大烏)’는 17관등 가운데 15위의 관등이 아니라, ‘대조(大鳥)’ 또는 ‘대조지(大鳥知)’라는 인명으로 파악하였다. 또한 신라와 백제 목간의 사례나 신라 문헌자료를 통해, ‘万拜’보다는 ‘再拜’로 판독한 견해가 옳음을 살펴보았다. 나아가 再拜란 용어는 문헌상으로 5세기의 사실부터 등장하며, 6세기 진평왕대에 많이 나타나고, 삼국통일 이후 확산되었다. 이는 중국식 문서형식의 수용과 유교적 예제가 정착되어 감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足下는 ‘발 아래’의 뜻과 존칭어로서 ‘그대’ 정도의 뜻 등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월성해자 목간은 존칭어 ‘족하’를 그대로 해석해야 함을 보여주었다. 나아가 족하의 사례를 한국문헌자료에서 찾아, 후삼국시대 국왕 사이에서 사용하였음을 확인하였다. 그리하여 족하 칭호는 상당한 지위에 있는 인물에게 사용하였으며, ‘족하’ 칭호를 사용한 대조지랑 또한 낮은 신분의 인물이 아닐 것으로 추측하였다, 존칭어 ‘足下’는 중국에서 기원한 것이다. 秦漢時代의 간독자료와 문헌자료에서 많은 족하의 용례가 있었다. 시기에 따라 사용 대상에 차이가 있었으나, 그 이후로도 사용되었다. 월성해자 2호 목간에서 ‘족하’가 사용되었고, 8세기 전반 경 일본의 ‘족하’ 사례를 통해, 이 용어 또한 중국에서 신라로, 신라에서 다시 일본으로 전파되었다고 추론하였다. 月城垓子 2호 목간은 존칭어 ‘足下’가 신라에서 사용되었음을 보여준 가장 이른 시기의 자료였다. 만약 이 목간이 아니었다면, ‘足下’ 칭호는 신라 말기에나 사용되었다고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이 목간으로 인해, 그 사용 시기를 소급할 수 있게 된 것은, 월성해자 2호 목간에서 찾아낸 또 하나의 성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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