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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안외순 (한서대학교)
저널정보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동방학 제41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219 - 254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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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6세기 조선의 대표적인 유학자 가운데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 1572)과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의 정치인식을 비교 고찰함으로써 그들의 개인적인 정치적 삶과 처지는 달라도 시국의 문제와 그 해결방식을 바라보는 점에 있어서는 동일했던 점을 확인하였다. 남명과 율곡은 35세의 나이 차이만큼이나 일생의 삶과 처신에서 일견 많은 차이가 있다. 남명은 일생을 ‘재야의 비판적 지식인’인 ‘처사(處士)’로서의 삶을 살았다면 율곡은 일찍부터 중앙정치 무대에 진출하여 중요 요직을 거치면서 개혁정치를 펼쳤던 ‘출사(出仕)’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명은 평생토록 재야에서 부당한 현실정치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고, 율곡은 현실정치 속에서 평생 개혁정책을 추진하였다는 면에서 각각 다른 세계의 대표적인 실천가였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이 글에서는 선조 초기에 저술된 남명의 <무진봉사(戊辰封事)>와 율곡의 『동호문답(東湖問答)』을 중심으로 구성과 체계성 여부에는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선조에게 폐정(弊政)을 개혁함으로써 왕도정치를 실현할 것을 요구하되 그 기본 구조는 군주인 선조(宣祖)의 명선(明善)과 성신(誠身)(수기(修己)), 용현(用賢), 그리고 안민(安民) 정책의 구조로 되어 있고 , 군주의 명선과 성신(수기)의 실천이 다름 아닌 폐정을 개혁하는 데 달려있다고 보는 인식이 동일하다는 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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