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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태형 (한국고전번역원)
저널정보
연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인문과학 인문과학 제116권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113 - 136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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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 시기 詞를 ‘小道’ 혹은 ‘薄技’라고 불렀고 남녀간의 애정을 다루는 ‘言情’의 문학으로 인식되었다. 반면 金元시기에 와서는 사에 ‘言志’를 부분을 강조하여 시대상황, 인생관, 정치태도 등을 반영한 작가의 주관적 의식을 투영하는 것을 중시했다. 또한 본격적으로 金元代에 오면 詞가 ‘情性’을 읊어 儒家의 詩敎論을 강조함으로써 音韻과 格律을 강구하지 않는 면이 많아지게 되어 詞의 음악적 특성이 점차 퇴색하게 되었다. 고려사인 이제현은 북송대 유영, 소식, 원금대 오격이나 원호문 등과 같은 사인이 즐겨썼던 사패를 본보기로 삼아 모방하여 독창적인 사작품을 많이 지었다. 실제 한국사인들은 사창작에 있어 금원대 유행했던 사론을 수용하여 호방사인 다용한 내용 · 주제 · 전고, 사조의 운용, 비슷한 구절이나 어구의 차용, 원운에 대해 차운하거나 화운하여 사를 지으면서 나름대로 자기 것으로 소화시켜 창조적으로 사를 짓곤 했다. 그래서 조선시대 서거정은 『東人詩話』에서 『益齋亂稿』 10권에 실려있는 이제현의 사작품을 매우 높이 평가하였다. 그는 고려시대 사인들은 중국어를 몰라서, 倚聲塡詞할 수 없었다고 인식했고, 이제현은 일찍이 중국에 가서 일찍이 北學을 배웠기 때문에 사를 지을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서거정의 학설을 비슷하긴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이제현의 53수 사작품 중에서 다용했던 5개 사패를 뽑아 분석해본 결과 , 그는 고려에 있을 때부터 이미 중국어를 알아서 사를 지을 수 지을 수 있는 기초토대가 있었고, 이후에 중국에 가서 많은 중국문인들과 교류하면서 사에 대한 다방면의 지식이론 및 실제 연습을 통하여 뛰어난 한국 특유의 사를 짓게 되었던 것이다. 아울러 그의 詞學 연원이 북송에서 원, 금 그리고 고려를 거쳐서 전래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동시대 또는 후학자들이 이제현처럼 수준 높은 사작품을 창작하지 못한 것은 그들이 이제현과 같은 사에 대한 다양한 기초토대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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