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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염복규 (서울시립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 역사문화연구 역사문화연구 제76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43 - 84 (4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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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주는 원래 평안북도 의주군에 속한 압록강변의 벌판에 불과했다. 러일전쟁기 경의선의 종착역으로 결정됨에 따라 급속하게 도시화된 전형적인 식민지 신도시이다. 이에 도시 형성 초기 일부 일본인이 시가지 토지의 상당한 부분을 점유하여 도시화 과정에서 증가한 인구 대부분은 차지인으로서 경제활동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또 수해의 위험 때문에 제방 안쪽만 시가지로 온전하게 기능할 수 있어 필요 공간 확장에도 제약이 많았다. 이런 특징 때문에 신의주에서는 언제든 지주와 차지인의 사회적 대립이 격화될 소지가 늘 있었다. 1920년대 말 일부 대지주의 무리한 차지료 인상을 계기로 이에 대항하여 신의주차지인조합이 조직되었다. 신의주 주민 절대 다수가 차지인이었기 때문에 차지인조합은 여러 계층․성향을 아우르는 연합적 성격을 보였다. 그리고 강령에서도 지주와의 합법적 타협을 통해 당면이익(차지료 인하)을 획득한다는 온건한 노선을 내세웠다. 차지인조합은 이런 노선에 따라 신의주의 토지소유와 차지료 현황에 대한 다각도의 조사를 바탕으로 지주측과 차지료 인하 교섭을 개시했다. 교섭을 위해 합법적인 쟁의 수단으로 차지료를 법원에 공탁했다. 공탁은 차지인조합이 주관하여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일부 지주와 교섭에 성공하여 차지료를 인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부분적인 성과에 불과했다. 거의 다른 사회․경제 활동 없이 오로지 토지소유자로만 일관하는 특정 대지주와의 교섭은 진척을 보지 못했다. 문제는 이 한, 두명 대지주의 소유 토지가 비정상적으로 압도적이어서 이들과 교섭이 차지인운동 전체를 좌우하는 상황이었던 점이다. 지주의 소유권 제일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근본적인 법적 무기가 없는 상황에서 온건․합법 노선을 추구하는 차지인조합의 활동은 ‘정치적’ 타협이 불가능한 지주에게는 명백한 한계를 보였다. 결국 일부 작은 성과 이상의 차지료 인합 교섭이 벽에 부딪친 가운데 차지인운동의 ‘운동성’은 점차 약화되었으며 이것은 운동의 전반적 쇠퇴로 이어졌다. 1920년대 말 신의주 차지인운동의 성쇠는 특수요인에 의해 형성된 식민지 신도시의 갈등양상의 특징, 그리고 그에서 비롯된 온건․합법노선 사회운동의 제한적 의미와 근본적인 한계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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