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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두철 (부산대학교)
저널정보
부산광역시 시사편찬위원회 항도부산 항도부산 제37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249 - 294 (4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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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복천동고분군은 고대에는 수영만을 앞에 둔 해상왕국으로서 김해 대성동고분군과 함께 전기가야의 중심지이자 맹주국의 묘역이었다. 하지만 기록에도 전하며 다소 우월하였던 김해세력의 그늘에 가려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 측면이 강하다. 고구려군 남정 이후 5세기 전반대에 후기가야에 들어서는 영남지역의 신문물 창달에 가장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이후 5세기 후반대에 빛을 보게 되는 신라 귀족문화의 밑거름이 되면서 그것에 묻혀 역시 주목을 받지 못하고 더러는 신라문화에 편입된 것으로 오해되기도 한다. 이러한 잘못된 인식론을 바로 잡기 위하여 본고가 기획되었다. 필자의 기존 연구 성과에 기초하여 가야사에서의 복천동고분군의 실제 위상과 가야와 신라의 성장과정에 끼친 영향력과 역할을 재평가하였다. 그 결과, 4세기대(전기가야)의 복천동고분군의 피장자 집단은 김해 대성동고분군과 함께 묘제나 부장품인 토기를 통해 알 수 있는 공통의 제의를 행하면서도 엄연히 이질적 집단이었다. 대성동고분군의 지배자 집단이 외래적 성격이 강하다면 복천동고분군은 토착사회에 기반한 안정된 집단으로서 결국 전기가야는 외래집단인 대성동고분군과 토착집단인 복천동고분군의 연합에 의해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양 집단에게는 공통성과 이질성의 양면이 상존한다. 5세기대(전환기와 후기가야)의 복천동고분군 집단은 사회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며 새로운 묘제나 유물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이후 고총고분시대의 후기가야와 신라 문화의 성립뿐만 아니라 왜의 고분시대 중기문화 성립에도 많은 영향을 준다. 5세기 후반대 이후는 세력이 약화되지만 연산동고분군과 함께 가야 세력의 일원으로서 그 역할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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