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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배호남 (초당대학교)
저널정보
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인문학연구 인문학연구 제29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161 - 193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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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을 맞아 정지용은 민족국가의 건설에 참여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 그러나 해방기의 정치적 혼란과 단정수립 이후의 반공주의 물결은 정지용의 시창작 의지를 한껏 위축시켰다. 본 논문은 정지용의 해방기 문학이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가, 그리고 그의 실패는 한국현대시사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를, 정지용이 해방기에 창작한 시와 산문의 구체적인 분석을 통해 살펴본다. 정지용은 1946년 1월 「그대들 돌아오시니」와 「愛國의 노래」 2편의 시를 발표한다. 2편 모두 광복의 기쁨과 환희를 격정적으로 표출한 시다. 이러한 격정적 토로는 이전의 정지용 시의 절제와 감각의 언어에 못 미치고 있다. 정지용의 새로운 민족문학에 대한 모색은 시가 아니라 산문을 통해 이루어졌다. 정지용에게 있어 산문은 시 창작의 활로가 닫혔을 때에 택하는 방법론적 우회로로 이해할 수 있다. 해방기 정지용의 산문을 분석해보면 그가 목표로 했던 시문학은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인민문학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의 기획은 산문적 당위성의 나열에 그치고 말았다. 정지용은 1949년 11월 4일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하면서 전향했으며, 1950년 2월 문화실장으로 취임한다. 1950년 초에 발표한 10편의 시들은 정지용이 이 당시 처했던 상황에 대한 두려움과 자조를 여과 없이 드러내며, 시조의 정형률로 퇴행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퇴행은 정지용의 시적 상상력의 파탄 징후를 드러낸다. 정지용은 일제강점기 내내 시의 형식과 내용 양 측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던 시인이었다. 해방이 되고 일본 제국주의라는 지배담론이 사라지자 정지용의 시에서 갈등과 긴장도 사라진다. 해방이 가져다 준 가능성이 역설적이게도 정지용의 시적 동력을 제거한 것이다. 정지용의 실패는 식민지 지식인의 자의식을 지녔던 일제강점기 시인들의 실패를 대변한다. 정지용이 단정수립 이후 반공이데올로기라는 프레임에 갇혀 언급조차 되지 못하다가 1980년대 말에 들어서야 겨우 해금되었다는 사실은, 한국 시문학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비극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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