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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정운 (경북대학교)
저널정보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한국학논집 한국학논집 제85집
발행연도
2021.12
수록면
43 - 72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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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18세기 대구의 역사공간적 특징을 연구한 것이다. 조선후기에 대구는 경상도의 중심이었다. 두 측면에서 그렇다. 하나는 행정의 중심이라는 제도적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문화적인 측면이다. 대구는 1601년 경상도 감영이 자리한 이후 관찰사가 거주하는 행정의 중심이었다. 이 때문에 경상도 전지역에서 사람과 물산이 대구로 모였다. 그래서 대구는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문화가 만들어 질 수 있었다.
다른 하나는 문화적 측면이다. 낙동강은 여러 물줄기가 합해서 영남의 중앙을 관통한다. 낙동강은 영남의 상징이며, ‘영남문화’로 일컬어지는 하나의 문화권을 형성하는 기반이 되었다. 대구는 낙동강의 중류에 위치하면서 경상도 전역의 문화가 만나는 지점에 있다. 조선후기 대구는 영남의 학문적·문화적 특징이 모두 수렴되는 곳이었다.
이런 배경에서 본고는 18세기 대구의 모습을 구성원의 일상에서 확인하였다. 경상도 관찰사로 대구에서 지냈던 조재호(趙載浩, 1702~1762)의 일상은 행정도시 대구의 다양하고 포괄적인 모습을 모여 준다. 같은 시기에 대구에서 거주하였던 사대부 최흥원(崔興遠, 1705~1786)의 일상은 대구 사대부의 생활과 관념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사대부의 일상에서 본 18세기 대구는 개방적이고 다양한 문화가 융합되는 도시였다.

목차

1. 머리말
2. 조재호(趙載浩, 1702~1762)의 일상과 대구의 다양성
3. 최흥원(崔興遠, 1705~1786)과 대구 사대부의 포용성
4.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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