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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권영명 (대전교구)
저널정보
한국교회사연구소 교회사연구 敎會史硏究 第60輯
발행연도
2022.6
수록면
73 - 110 (38page)
DOI
10.35162/rfkch.2022.06.6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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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일제강점기 동안 한국천주교회의 한국인 교구장 교체의 배경 중에 하나로 보는 일본천주교회의 일본인 교구장 교체와 관련하여 기존의 연구를 발전시키고자 하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결정에 따라, 2020년부터 비오12세 교황 재임시기의 사료들을 연구자들에게 개방되었기에 인류복음화성 역사문서고의 자료들을 가지고 이러한 교구장 교체 작업을 재구성해 볼 수 있었다. 따라서 교황청이 외국인 선교사들에서 현지 일본인 사제들로 일본교회의 장상 자리를 교체한 사건과 배경에 대해 새로운 사실들과 과정들을 보여줌으로써 한국교회의 교구장 교체 문제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한 바탕을 만드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1920년대에는 교황청의 선교지역 교회들의 현지화 시도 노력의 일환으로 첫 일본인 주교가 탄생하였다. 하지만 1930년대에 들어서 일본은 국가주의를 강화시켜 나가면서 그에 반대되는 것들은 강제적으로 누르기 시작하였다. 급속히 성장해 나간 공산주의는 교회도 국사신도도 거부하였기에, 교황청과 일본 정부는 이 공동의 적에 서로 협력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교황청은 신자들에게 신사참배를 허용하였지만, 2년 후인 1938년에 중일전쟁으로 일본정부는 한층 강화된 종교 통제 정책을 펼쳤다. 이러한 상황 안에서 일본인 사제들이 가고시마 지목구장, 나가사키 교구장, 도쿄 대교구장으로 임명되었다.
1940년에 시행된 종교단체법은 결정적으로 일본교회의 장상 자리에서 외국인 선교사들을 물러나게 만들었다. 주일 교황 사절은 일본정부에 천주교회의 특수성을 설명하면서 이 법에서 예외 대상이 되기를 바랬고, 교황청에도 이 법의 심각성을 지속해서 알렸다. 하지만 태평양전쟁을 앞둔 일본에게는 예외는 없었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1940-1941년 사이에 서양 선교사들이 일본교회의 장상 자리에서 급하게 사임하였고, 이 빈 자리들에 일본인 사제들이 대부분 서리로 임명되었다. 그래서 한 명의 사제가 두 개의 구역을 맡기도 하였다. 이러한 장상 자리의 교체 준비가 잘 되었다면, 일본인 사제가 서리가 아니고 곧장 지목구장이나 대목구장 또는 교구장으로 임명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 안에서 일본교회는 현지인에게 교회의 장상 자리를 넘겨주는 작업을 서둘러서 처리하였음을 보여준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1920년대 일본교회의 일본인 교구장 임명
3. 1930년대 일본교회의 일본인 교구장 임명
4. 1940년대 일본교회의 일본인 교구장 임명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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