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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종우 (상지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역사민속학회 역사민속학 역사민속학 제62호
발행연도
2022.6
수록면
95 - 130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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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의 저술 목적은 선조 대의 황랍 반입 사건을 검토하고, 이것을 통해 선조 대에 왕실의 불교 신앙이 유지되었고, 선조가 왕실의 위엄을 높이려고 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또한 서인(西人)들은 선조(宣組)의 황랍 반입에 반발했던 이이(李珥)를 자신들의 종주로 삼고, 대간의 모범의 위상을 부여했는데, 이 과정에서 선조의 황랍 반입 사건을 꾸준히 상기시켰음을 드러내는 것도 본 논문의 저술 목적이다.
선조 7년(1574) 3월 20일, 선조가 황랍 500근을 들이라는 명을 내렸다. 황랍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며, 당시로서는 매우 귀한 물품이었다. 그런데 유신들은 선조의 황랍 반입이 불상 제조를 위한 것이라고 의심하면서 황랍 반입을 반대했다. 이에 대하여 선조는 극단적인 말을 사용하면서 반발했다. 이후 선조는 독서를 위한 초 제작을 위해 황랍을 반입했다고 해명했고, 초를 제작하고 남은 황랍을 반납하는 것으로 사건은 종료되었다.
선조의 황랍 반입은 왕실이 선조 초부터 불사를 많이 벌였다는 점, 500근이라는 황랍의 양, 황랍과 수은을 함께 도입했다는 점 등을 고려했을 때 불상 제조 등 불사를 벌이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유신들의 반발로 무산되었고, 이 과정에서 선조는 유신의 반대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이것을 통해 왕실의 권위를 확인했다. 또한 서인들은 훗날 이 사건의 재생산을 통해 선조의 황랍 반입에 대하여 강하게 간언하고 사직까지 했던 이이를 서인의 종주로 삼고, 이이의 행동을 간언의 모범으로 삼았다.
선조의 황랍 반입 사건을 통해 선조 대까지 왕실이 불교 신앙을 유지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숭유억불”로 일반화되는 조선시대 종교지형에 반대되는 사례이다. 또한 물질과 물질에 관하여 사람들이 생산한 담론의 검토를 통해 특정 시대의 종교지형을 파악할 수 있음도 확인된다.

목차

국문요약
1. 머리말
2. 사건의 개요
3. 사건의 진상-불상 제조를 위한 황랍 도입
4. 사건 속의 맥락
5. 선조의 황랍 도입 사건의 의미
6.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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