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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허종 (충남대학교)
저널정보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동서인문 동서인문 제20호
발행연도
2022.12
수록면
397 - 428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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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덕은 일제강점기 동안 독립운동으로 일관했으며, 해방 무렵 민족혁명당 소속으로 임시정부 문화부장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일제의 항복선언 직후 임시정부의 위상과 역할의 한계를 인식하여 사실상 임시정부의 해체에 가까운 입장을 가졌으나, 귀국 후에는 임시정부의 역사적 임무완수라는 입장에서 임시정부 대표 자격으로 임시정부의 위상과 역할을 강조하는 활동을 벌였다. 1946년 1월 소속 당의 결정에 따라 우파 편향으로 기우는 임시정부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으나, 당의 내분과 오랫동안 함께했던 김규식의 행보에 영향을 받아 민족혁명당을 탈당하였다. 동시에 국가건설에 기여하기 위해 여러 우파 계열의 정치 단체에 참여하여 임시정부의 위상을 높이고 기반을 넓히기 위한 활동을 벌였다. 또한 김규식이 주도하는 좌우합작운동을 지지하는 등 좌우합작을 통한 국가건설의 입장도 견지하였다. 이 시기 정치 활동을 벌인 유력 인사 가운데 그처럼 외연을 확장하며 활동을 벌인 인사는 드물었다.
그는 1947년 2월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의 의원으로 기용되었다. 그는 입법의원으로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의미하는 헌법 제정의 제안에 참여했으며, 이승만을 유엔 한국 대표로 승인하려는 청원에도 참여하였다. 나아가 유엔한국임시위원단에 남한만의 단독선거 실시를 요청하는 동의안 제출에 참여하였다. 그의 행보는 남북 분단의 항구화를 우려하며 남한만의 선거를 반대했던 김규식 중심의 중도 세력의 입장과 대립되는 것이었다. 국가건설 방식에 대한 그의 인식 변화는 한국 문제에 대한 미국과 소련의 입장 차이, 좌우 세력의 대립 등으로 좌우합작을 통한 통일된 국가수립이 어렵다고 판단했고, 차선의 방안으로 현실을 인정하여 불완전하더라도 국가 수립이 시급하다고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제헌국회 의원으로 당선되어 헌법 제정을 위한 기초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정부 수립후 친일파 처벌을 위한 반민특위 위원장으로 선출되어 반민특위 활동을 주도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해방 후 귀국과 임시정부 활동
3. 민족혁명당 탈당과 임시정부 강화 활동
4. 입법의원 활동과 단독선거 지지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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