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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유영춘 (군산대학교 가야문화연구소)
저널정보
한국고고학회 한국고고학보 한국고고학보 제2022권 제2호
발행연도
2022.6
수록면
389 - 424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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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행검(모)은 고대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교류 관계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유물 중 하나이다. 본고에서는 국내에서 출토된 11점의 사행검과 1점의 사행모를 대상으로 용도와 형태적 변천·전개양상 등을 고찰하였다. 사행검(모)은 실제 전쟁에 사용된 무기(武器)라기보다 비실용 목적으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산해경』의 우사첩과 뱀의 상징성 등을 참고하면, 연안 및 내륙수로 항해 시 항해자의 안전을 기원하기 위한 제사용 의기(義器) 및 신물(神物)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피장자의 영생과 부활을 기원하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에서 출토된 사행검(모)의 시간적 변천을 보여줄 수 있는 속성으로는 신부의 형태가 있다. 초기에는 굴곡이 미미한 D형이 주로 등장하다가, 5세기 중반과 후반을 기점으로 굴곡이 많은 A~C·E형이 제작된다. 이러한 변화는 일본열도 사행검의 변화와 차이가 있다. 사행검(모)은 일본열도에서 기원한 후, 5세기 전반 무렵 왜와의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연안항로를 따라 한반도에 전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무렵에는 왜계 고분에서 주로 출토되다가, 5세기 중반~5세기 후반에 이르러 내륙 교통로와 가까운 재지(在地)의 고분에서 출토된다. 아마도 사행검 제작기술이 교통로를 따라 내륙으로 전파된 후, 고도의 철기 생산기술을 가진 집단을 중심으로 수용되면서 현지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6세기 전반 이후에는 사행검(모)의 출토 사례를 찾을 수 없어 이 무렵 매장의례가 소멸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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