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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임미현 (숙명여자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 역사문화연구 역사문화연구 제82호
발행연도
2022.5
수록면
125 - 158 (34page)
DOI
http://dx.doi.org/10.18347/hufshis.2022.8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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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재(兢齋) 김득신(金得臣, 1754~1822)은 영·정·순조대의 도화서 화원이자 규장각 초대 자비대령화원이다. 그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화원가문인 개성김씨 출신으로 44년 이상을 화원으로 봉직하며 주요한 화사의 중책을 맡은 전형적인 조선 후기 도화서 화원의 면모를 보여준 화가이다. 또한 그는 잘 알려진 풍속 외에도 산수, 인물, 영모, 화조 등 거의 모든 장르에서 뛰어난 실력을 뽐내던 당대 최고의 화가 중에 한 명이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홍도 화풍의 영향을 많이 받은 화가라든지, 풍속으로만 유명한 화가라든지 그를 한정해서 보는 시각들이 많았다. 이러한 점에 주목하여, 이 논문은 김득신의 생애를 재구성하여 한국회화사에 끼친 그의 영향력을 재평가해보고자 하였다. 김득신의 양가는 조선 후기 명문 화원집안인 개성김씨와 신평한씨로, 그는 일찍부터 철저한 교육을 받고 십대에 도화서 화원 생활을 시작하였다. 1772년(영조48) 『육상궁시호도감의궤』를 비롯하여 19개의 의궤에서 그의 이름이 등장하여 그의 공적 활동을 짐작케 해준다. 또한 규장각 자비대령화원 직제가 생긴 후, 그는 초대 자비대령화원으로 선발되어 37년간 규장각 내부 활동에 정진하였는데, 용주사 불화 조성의 감동(監董), 정조어진 도사, 《화성원행도병》 제작 등 주요한 화업뿐만 아니라 어제 인찰, 도서 편찬 등 일상적인 업무에도 충실하였다. 이같은 탁월한 기량과 성실한 태도로 정·순조 시기 기복 없이 신임을 받았는데, 10차례의 포폄등제(褒貶等第) 기록, 녹취재에서 19회에 걸쳐 정6품 사과(司果)와 정7품 사정(司正)에 부록된 성적, 두 차례의 도화서 별체아 부록 등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는 공적수행 뿐만 아니라 사적인 작품 활동도 꾸준히 전개해나갔다. 그는 김응환을 비롯한 가문 인맥과 김홍도, 이인문 등 선배 화원들과의 친분을 통해 조선 화단의 중요한 인맥들과 교류의 폭을 넓혀나갔다. 이같은 인맥을 통해 그는 사적인 주문을 받아 다양한 장르의 그림을 제작하였는데, 《고산구곡시화병》, 《한강주유아회첩》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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