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조규태 (한성대학교)
저널정보
동학학회 동학학보 동학학보 제62호
발행연도
2022.6
수록면
45 - 74 (30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이 글은 동학농민운동의 지도자였고, 갑진개화운동 후 천도교를 창 시하였고, 민족대표로 3·1운동을 주도한 천도교의 3세 교주 손병희의 근대화운동과 자유민주주의사상의 확산에 대한 글이다. 구체적으로 손 병희의 자유민주주의사상의 수용 시기와 이론, 자유민주주의사상의 천 도교 내 반영 노력, 자유민주주의사상에 입각한 신인간 형성 활동에 대하여 검토하였다. 손병희는 동학농민운동 후인 1890년대 후반 평안도 등 서북지역에 동학을 포교하면서 문명론을 접촉하였다. 미국의 문화와 문명을 경험 해보기 위해 1901년 조선을 떠나 일본에 간 손병희는 조희연·권동진· 오세창·박영효 등의 문명개화파 인사를 만나 문명론과 자유민주주의 사상을 수용하였다. 그리고 그는 부강하고 신앙·언론·출판·집회·결 사 등의 자유가 허용되는 미국·영국과 같은 자유문명국을 수립하고자 하였다. 1904년 진보회를 조직하고 문명개화운동을 추진한 그는 1905 년 12월 동학을 천도교로 바꾼 후 교회의 제도를 자유민주적으로 개편 하고, 3·1운동을 통하여 민주공화제의 자유민주적 독립국가를 실현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자유·의지·조화의 정신을 갖춘 신인간을 형성함으로써 자유민주적 천도교의 이상사회를 구현하려고 하였다. 이 연구를 통하여 천도교 내에 자유민주주의사상이 수용되어 확산된 후 제도의 변화와 교인의 사상적 변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규명할 수 있다. 1920년대 천도교의 신파가 구파 및 연합회파와 분리되고, 1948 년 평남의 천도교인들이 김일성체제에 반대한 이유를 밝힐 수 있다. 마지막으로 1920년대 민족운동 세력이 분화한 원인을 밝히는 데 도움 을 줄 수 있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