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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임학성 (인하대학교)
저널정보
국립해양유산연구소 해양문화재 해양문화재 제16호
발행연도
2022.6
수록면
143 - 172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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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을 통치 질서의 근간으로 삼았던 조선왕조는 공간에 대한 인식 및 운영 정책에서도 ‘화이론(華夷論)’을 적용하였다. 즉 통치의 영역이 미치는 공간을 ‘화(華=문명)/이(夷=야만)’로 구분하면서 섬 지역을 임금의 교화(敎化)가 미치지 못하는 ‘이역(夷域)’으로 간주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 공도(空島) 정책을 실시하여 육지와 가깝거나, 또는 군현을 설치할 정도로 규모가큰 섬을 제외한 나머지 대다수의 섬에는 주민을 거주하지 못하게 하였고 그 대신 말을 키우기위한 국영목장(國營牧場)을 설치하였다. 그러나 임진과 병자의 두 차례 병란을 겪고 난 17세기 중반 이후, 섬 지역에 대한 조선 정부의 인식 및 관심, 그리고 운영 정책은 크게 변화할 수밖에 없었다. 그 변화의 골자는 ‘공도(空 島)’에서 ‘입도(入島)’로의 변환이었으며, 결과는 해로 상 요충지에 해당하는 섬 지역에 수군진(水軍鎭)을 설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로소 섬을 유용한 공간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었다. 조선시대 섬 지역에 대한 인식 및 정책의 변화상을 전라도 지역의 사례로 고구해 보았다. 연구 결과 확인되었거나 유추할 수 있었던 양상들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조선 전기(15세기 전반)에는 30여 개 정도만을 파악(인식)할 수 있었던 전라도 지역의섬이 조선 중기(16세기 전반)에는 무려 250여 개로 급증하고 있었으며, 조선 후기(18세기 중엽과 19세기 중엽)에 이르러서는 그 급증의 양상이 더하여 430~460여 개나 되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전라도 지역의 섬에 설치된 국영목장은 조선 전기(15세기)에는 34개였으나, 조선 후기(17세기 후반)에는 그 절반가량인 15개로 급감하였다. 조선 중기 이후 폐장(廢場)된 국영목장도 34개나 확인되었다. 이는 조선 정부가 조선 중기 이후 섬에 대한 파악이 급증한 것과는반비례하는 양상이었다. 셋째, 공도 정책의 폐지 및 국영목장의 폐장 결과, 전라도 지역의 섬에는 입도하는 이주민들이 급증하여 조선 후기 30년 동안(18세기 중엽~말엽) 23%의 인구 증가율을 보인 곳도 나타났다. 그 결과 일부 군현의 경우 전체 인구 중 섬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30%에 달하는 곳도 있었다. 인구의 급증은 섬의 위상을 크게 변화시켰고, 일부 섬 지역은 면리제(面里制)로 편제되어 육지와 대등한 행정단위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넷째, 인구의 급증으로 섬 지역에 수군진을 증설한 양상도 확인되었는데, 조선 중기(15~16 세기)까지 전라도 지역의 수군진이 설치된 섬이 7개였으나, 조선 후기(17~18세기)에는 15개로두 배가량이나 증설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상 요약한 바, 조선 후기에 들어와 전라도 지역의 섬에는 적잖은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변화의 토대는 조선 정부의 섬에 대한 인식과 관심의 확장 및 그에 부합한 정책의 전환이었다. 이제 섬은 더 이상 ‘단절’과 ‘고립’의 공간이 아니라 ‘소통’의 공간이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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