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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오영훈 (서울대학교)
저널정보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동아시아문화연구 동아시아문화연구 제91호
발행연도
2022.11
수록면
13 - 38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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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일제강점기 한국에서 일반적인 등산과 구분되는 전문등반이 처음 시연되고 정착해 간 과정을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한국에서 전문등반은 1920~30년대 등산을 장려한 식민정부 정책 속에 모험 등반에 대한 우호적인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정착했다. 미국ㆍ영국ㆍ일본의 제국적 세력 확장 대상지 중 하나로 조선이 인식된 상황에서, 자국에서 등반을 익힌 서양인ㆍ일본인들이 조선에서 처음 등반을 시작했다. 호러스 호턴 언더우드 등 기독교 포교와 서양식 교육사업에 주력한 미국인 선교사ㆍ교육자, 영국과 유럽에서 엘리트 계층 편입을 꾀한 영국인 외교관 클레멘트 휴 아처, 관광지 개발을 업무로 삼던 총독부 철도국 직원 이이야마 다츠오, 모험적인 인류학 연구로 제국의 폭력을 이용하면서도 그 책임을 회피하려 했던 이즈미 세이이치 등, 서양인ㆍ일본인 등반가들은 피식민지의 인적 없던 험준한 산에 제각각의 국가적ㆍ문화적ㆍ사회적 정체감을 투영하면서 전문등반을 실행에 옮겼다. 이들의 교차하던 활동으로 조선 내 등반대상지는 신속하게 개척되고 체계적으로 정립되었다. 스포츠적 곤란함을 척도로 삼아 경쟁하는 전문등반의 규칙체계도 구축됐다. 산발적이었던 서양인과는 다르게 재조일본인들은 조선산악회나 각급 학교 산악부를 통해 조직적으로 등반에 나섰다. 재조일본인 등반가들은 본토의 일본산악계와 교류하면서 조선 전문등반의 지평을 확장하고 히말라야 등반을 꿈꿀 정도까지 진전시켰고, 여기에 여러 조선인 등반가들이 참여했다. 급속한 도시화와 근대화 속 경성의 피식민 주체들 사이에는 개인주의와 무력감의 분위기가 퍼져 있었는데, 전문등반은 일종의 탈출구이자 자신의 정체감을 새롭게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다. 일본 본토-재조일본인-조선인으로 느슨하게 엮인 범일제 산악계의 참여 함수관계는 경쟁이었다. 이런 스포츠적 경쟁 관계를 1930년대 조선인으로서 선구적인 등반가이자 훗날 해방 이후 한국 산악계의 주역으로 활동하는 김정태는 배타적 민족주의의 표출로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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